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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130

[역사] 미움이 컸던, 이기붕 최루탄이 박힌 학생의 시신사진과 깡패에게 피습 당한 학생사진은 4.19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군인은 정권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이에 4월 25일 대학교수(27개 대학 258명)들이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여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후, 다음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돌입했다대통령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모두 물러나라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부정선거 다시 하라교수단 시위는 기존의 반정부 시위에서 대통령 하야 시위로 성격이 변화되었고, 통금시간대 이후 철야시위에도 군의 개입은 없었다. 4월 26일 새벽 통금이 해제되자, 군중이 운집하여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오전 9시경 이기붕의 자택이 피습되었고, 9시 30분경에는 파고다공원의 이승만 동상이 무너.. 2026. 6. 18.
[서울] 을지로 언덕, 구리개 이전 글 머리와 처세로 출세한 얼자, 하륜>에서는 조선 새도읍 후보로 공주 계룡산, 무악 및 한양이 거론되었고, 결국 정도전이 추천한 한양이 새도읍으로 정해졌다고 언급했다. 조선은 도읍·궁궐을 정함에 있어 풍수지리를 중시하였다. 한양을 새도읍으로 정한 후에도, 경복궁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무학대사는 한강 남쪽에서 오는 화기를 막으려면 궁을 동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도전은 중국의 선례를 들며 남향을 고집했다. 새도읍에 이어 궁궐의 배치까지 정도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경복궁은 지금처럼 남향으로 지어진다. 하지만 이전 글 조선 2인자의 픽, 정도전 집터>에서는 정도전의 집터 내에 안채, 서당, 마구간의 배치가 풍수지리에 맞춰졌다고 언급했는데, 정도전 또한 풍수지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2026. 6. 18.
[대학] 한총련 이후 소멸된, 학생운동 요즘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겠지만, 1990년대 후반 학번만 하더라도 얼굴을 가린 이들이 교정에서 죽창 들고 다니는 모습을 한번씩을 봤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학생운동단체하면 다음의 명칭이 생각난다. 서대협전대협서총련한총련 1987년 7월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은 이한열 장례식 및 전국 학생연대조직 건설을 논의하기 위해 각 지역 총학생회장 회의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다음 달 8월 개최된 창립총회(충남대)에서 이인영(고려대 총학생회장, 서대협 의장)이 초대 전대협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전대협의 기치는 구국의 강철대오(강철과 같은 무리)였으며, 독재정권 하에서 비민주주의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로 인식되었.. 2026. 5. 20.
[역사] 사랑이 금지된, 궁궐 1425년(세종 7) 12월 10일 내은이(궁녀)가 임금이 쓰던 푸른 옥관자(망건에 다는 작은 옥고리)를 훔쳐 손생(환관)에게 건네면서, 서로 언약을 했다가 참수형에 처해졌다. 속대전에 따르면, 궁녀가 간통하면 두 남녀는 부대시(不待時, 사형집행시기인 가을철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참수했다. 별감은 궁녀와 함께 근무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정분(情分, 사귀어서 든 정)이 날 확률이 높았다. 특히 10대 별감·궁녀는 연모의 본능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1453년(단종 1) 4월 14일 중비(심부름 담당 궁녀)가 부귀(별감)를 연모했다. 이전 글 평생 궁에서만 지낸, 궁녀>에서 궁녀와 궁녀의 하녀에 대해서 언급했었는데, 심부름 담당이라는 점에서 중비는 방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중비가 부귀에게 붓.. 2026.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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