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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103

[역사/서울] 왕십리 옆 무당마을, 신당리 조선시대 왕십리는 광희문 바깥의 넓은 지역으로,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했다. 고려시대 남경 동촌에 위치했던 왕심리(旺心里·往十里)가 17세기 이후 왕십리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십리(往十里, 십리를 더 간다)는 조선 초기의 설화와 송별풍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세기까지 현재의 신당동·황학동·무학동·흥인동 일대는 행정적으로 왕십리계(往十里契)에 편입되어 있었다. 조선 건국 후 새도읍의 터를 찾던 무학대사는 오늘날의 왕십리 인근에서 소를 타고 지나던 노인을 만났고, 그 노인이 십리를 더 걸으면 좋은 터가 있다고 알려 줬다고 한다. 근데 훗날 무학대사가 초상화를 통해 자신이 만났던 노인이 도선대사임을 깨달았다는 설도 있는데, 오늘날 도선동(道詵洞)이 유래된 배경이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2025. 9. 18.
[역사] 지정학이 좌우했던, 해외여행 오늘날 한국인들은 해외여행을 국내여행 만큼이나 수월하게 갈 수 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그러지 못했다. 1983년 관광여권이 조건부로 발급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점차 제한이 완화다가 1989년 1월 해외여행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다. 서울올림픽를 치른 지 3달 만이다. 그 전까지 정부는 국가발전에 유익한 목적(유학·출장·노동이주 등)에 한해서만 해외여행을 허가했는데, 일반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을 규제했었던 이유가 복합적이었다. 열악한 경제환경 속에서 외환보유고가 부족했기에, 관광(해외소비)를 통한 외화유출을 방지하고자 했었다. 또한 냉전시기였던 만큼 적국(북한)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기에, 해외로 나가는 이들은 반공·방첩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렇듯 과거에는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정세가 해외.. 2025. 9. 2.
[조선] 평생 궁에서만 지낸, 궁녀 현대인에게 널리 알려진 궁녀 이야기 중에서 의자왕(무왕 아들, 백제 마지막 왕)의 삼천궁녀를 빠트릴 수가 없는데, 낙화암에서 삼천 궁녀들이 차례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다. 백제가 멸망하기 5년 전만 해도, 의자왕은 정복사업 차원에서 신라를 공격하여 30여개의 성을 정복했다. 역사는 패자의 기록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1941년 윤승한은 소설 김유신에서 의자왕과 삼천궁녀 에피소드를 언급된 이후, 소설적 상상이 역사서로 옮겨 왔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비감에 휩싸인 궁녀는 대중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문학적 허구가 현실적 역사로 왜곡된 사례가 많았던 시기로 보이며, 그 이미지는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뚜렷한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전 글 뒤늦게 만들어진.. 2025. 8. 14.
[지리] 거친 바람의 나라, 제주 2025년 8월 KLPGA 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제주 사이프러스)서 고지원이 우승했다. 지난 6월 고지우가 맥콜·모나 용평 오픈(평창 버치힐)에서 올해 첫승을 한 이후 2달이 채 되지 않아, 자매가 우승을 한 것이다. 제주의 여름골프는 육지사람이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러프 바로 옆에는 귀신풀(도깨비풀)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변화무쌍한 비·바람도 한 몫한다. 사이프러스에서의 3라운드와 최종라운드 내내 이런 음침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제주 출신 고지원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을 것이다. 어쨎든 2부 투어를 병행하던 신인이 자신의 홈그라운드 이점을 잘 살려서 성과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자매의 부모는 얼마나 기뻤을까. 지금까지 국내투어 무대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는 제주 출신의 선.. 2025.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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