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도시150 [역사] 조선 최고 학군지, 선산 2026년 9월 추석 하행길은 9시간(휴게소 정차 30분 포함)이 소요되었다. 동양고속이 섭외한 관광버스였으며, 다소 어려 보이는 기사는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면서 국도를 따라 운전했다. 반포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용인·청주·보은을 거쳐 6시간 30분 만에 상주IC로 빠져 나왔고, 고속도로를 10분 가량 달려 선산휴게소(중부내륙고속도로, 구미시 옥성면)에 도착했다. 과거 선산휴게소는 수도권·영남권을 잇는 핵심 환승거점이었으나, 상주영천고속도로 개통 이후 많은 노선이 낙동강휴게소(의성군)로 변경되었다. 옥성(玉城, 구슬같은 산성)은 고을 뒷편을 둘러싼 복우산(伏牛山, 소가 누운)의 산세와 복우산성의 형태가 마치 구슬을 꿴 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에 속했고, 일제강점기 선산군.. 2026. 9. 26. [역사] 세조의 죽음과 함께 진, 남이 세조는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한 신진세력 육성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문제는 세조의 바람막이 역할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너무 빨리 끝났다는 점이다. 1468년 세조가 급서한 후 19세의 예종이 즉위했는데, 세자 시절부터 대리청정을 하며 제왕학을 익힌 예종은 훈구대신의 기를 꺾기 위해 노력했다. 부친의 묘호를 대신들이 올린 온화한 신종(神宗) 대신 세조(世祖, 강력한 무공)로 관철하기도 했는데, 세조의 엄격한 통치방식을 이어받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예종 입장에서는 훈구세력·신진세력 모두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예종은 남이를 병판에서 해임한 후, 겸사복장(兼司僕將, 정2품)으로 강등시켰다. 겸사복장은 국왕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무관직으로, 사복(司僕)을 겸하는 관직이었다. 같은 정2품 무관직이라도,.. 2026. 9. 17. [역사] 왕가의 공간, 서울공예박물관 #3 1869년 흥선대원군이 연경궁(구 동별궁)에 있던 전계대원군(사도세자 서손자, 철종 부)의 사당을 영평군(철종 형)이 살던 누동궁(樓洞宮, 현 종로세무서 동쪽)으로 옮긴 뒤, 1880년 안국동별궁을 신축했다. 참고로 누동궁은 영혜옹주(철종 딸)과 박영효가 혼례를 올린 곳이다. 이 때 명성황후는 3남 1녀를 낳았으나 어릴 때 모두 죽고 차남 이척(훗날 순종)이 왕세자로 책봉된 후 9세가 되어 가례를 앞두고 있었다. 1881년(고종 18) 간택된 세자빈(민태호 딸, 훗날 순명효왕후)이 안국동별궁이 교육을 받게 되었고, 1882년 2월에 성대한 가례식을 거행된다. 1904년 순명효황후이 세상을 떠나자, 삼년상을 치룬 후인 1906년 황태자의 가례를 위한 금혼령이 내려진다. 안국동별궁에서 새로운 황태자빈(윤택영.. 2026. 9. 13. [역사] 왕가의 공간, 서울공예박물관 #2 성종(자을산군)은 의경세자(세조 장남)와 세자빈 한씨의 차남로 태어났는데, 형이 월산군이다.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여윈 자을산군은 모친과 함께 출궁하게 된다. 1467년(세조 13) 자을산군은 동별궁에서 한명회의 딸(훗날 공혜왕후)과 혼례를 치렸다. 1468년 세조가 죽은 후, 즉위한 예종(의경세자 동생)도 약 10개월 만에 사망하면서 후계문제가 발생한다. 13세의 자을산군은 왕위계승 3순위였지만, 정희왕후(세조 비, 성종 조모)의 명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임금이 된다. 당시 제안대군(예종 아들)은 3살이었고, 월산군은 병중이었다. 자을산군이 예종의 양자 자격으로 경복궁에서 즉위했다. 왕위계승 순위에서 밀렸던 성종이 즉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명부와 훈구대신의 결탁이 있었다. 정희왕후의 의.. 2026. 9. 13. 이전 1 2 3 4 5 6 ··· 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