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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68

[역사/중국] 국적이 변화한, 화교 2010년대 중반 명동역 3번 출구 앞에는 동보성(東寶城, 1975년 개업)이라는 중식당이 있었는데, 친척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친척동생은 화교가문으로 장가를 가는 것이었고, 하객들 중에는 화교가 많았다. 당시 옆테이블의 대화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상당 수의 화교 2~3세들이 강남 일대에 거주할 뿐 아니라, 직업도 전문직(특히 의사·한의사)이 많다는 것이었다. 타국으로 건너 온 외국인이 현지의 텃세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노선이 교육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전 세계 화교의 수는 6천만명 가량으로 알져지고 있으며, 현지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화교의 특성상 나라마다 차이나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 등)에 가장 많이.. 2025. 4. 24.
일본 혼란기에 등장했던, 영웅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은 원래 쇄국파였는데, 10년 만에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1853년 미국 흑선(黑船, 검은 증기선)의 등장은 일본인에게는 말 그대로 블랙스완이었다. 1854년 막부는 천황과의 상의없이 미국과 화친조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하급무사(사쓰마번·조슈번)들이 존왕양이(尊王攘夷, 천황을 옹립하고 오랑케를 물리침)를 내걸고 막부타도에 나섰다. 하지만 서양군대의 무력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으며, 이에 1863년 사쓰마번·조슈번은 적극적으로 개항파로 변신했다. 국가개조의 시작, 유신 당시 토막파(討幕派, 칠 토)는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인 반면, 좌막파(佐幕派, 도울 좌)는 막부를 돕는 세력이었다. 메이지천황을 앞세운 토막파는 좌막파를 누르고,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 .. 2025. 4. 4.
[역사/인물] 탈인간적이면서 인간적인, 이이 1575년(선조 8) 이조정랑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심의겸(서인)·김효원(동인)이 충돌은 당쟁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중재했다고 알려진 이이는 서인의 종주로 역사에 남았다. 서인의 표면에 이이가 있었다면, 그 뿌리에는 송익필이 있었다. 삼현수간(三賢手簡, 보물 1415호)은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한집으로, 여기서 삼현(3명의 현자)은 송익필·성혼·이이를 말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주요 사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며, 놀라운 점은 삼현과 그들을 후원하던 심의겸(명종비 동생)이 모두 파주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인재가 머무는 마을, 파주 송익필(1534년생) : 교하현성혼(1535년생) : 눌노리심의겸(1535년생) : 광탄이이(1536년생) : 율곡리 이전 글 .. 2025. 2. 27.
[역사/교육] 조선인 엘리트의 산실, 고보 최근까지도 국내 최대 학연집단은 KS(경기고·서울대)였으며,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관료·정치권에서는 KS출신이 허다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은 인물은 이회창·한덕수가 있는데, 1953년 경기고를 졸업한 이회창은 아버지·형제가 모두 경기고를 졸업했다고 한다. 실제 1970년 경기고 졸업생 80% 이상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인데, 명문학교로의 명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은 경기고의 전신으로, 일제강점기 내내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가장 많은 합격생을 배출한 학교가 경성제일보고였다. 1973년 고교평준화가 시행되기 전까지 경기고는 국내 최초·최고의 명성을 이어왔다. 조선인 중등교육기관, 고보 일제강점기 조선인 엘리트를 언급할 때, 고..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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