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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130

[음식] 버려졌던 귀한 단백질, 아귀 마산의 역사를 보면, 마산사람들의 강렬한 기질이 어떻게 생겨났을지 가늠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왜구의 노략질이 판을 쳤으며, 원나 라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주요 전투지를 거쳐 구한말 개항장(일본인 집단거류지 포함)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 군수물자 하역항이었고, 4·19와 부마항쟁의 진원지였다. 도시의 기질은 음식에 반영되면, 마산은 맵고 자극적인 아귀찜이 유명하다. 일본 하카타만(규슈 북부) 연안에는 20㎞ 가량의 해안성벽이 있는데, 원구방루(元寇防壘, 겐코보루이)라고 부른다. 가마쿠라 시대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것이다. 고려 충렬왕대 여원연합군(4만 병력)이 합포(현 마산)를 출전기지로 삼아 2차례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하카타만 앞에서 태풍으로 인해 실패했다. 이후 합포는 .. 2026. 8. 4.
[도시] 신비로운 동양, 만달레이 2025년 3월 미얀마 중부에 모멘트 7.7(리히터 8.2)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방콕(태국 수도)에서도 큰 진동이 감지될 정도였고, 짜뚜짝 시장 인근에서 신축 중이던 건물이 붕괴되었다. 진원지는 만달레이 근교로, 사가인(Sagaing)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의 깊이 10km 지점이었다. 강진의 피해가 만달레이의 불교유산에 큰 피해를 입혔다. 만달레이(Mandalay)는 미얀마에서 2번째로 큰 도시로, 양곤(미얀마 최대도시)에서 북쪽으로 716km 가량 떨어진 미얀마 중부도시이다. 중국 윈난성에서 이주한 중국계 인구도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미얀마 내 교통·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에야와디강(이라와디강) 동안에 자리한 마지막 양조(꾼바웅)의 수도였으며, 불교문화의 유서가 깊은 도시.. 2026. 7. 20.
[역사] 북유럽에서 전파한, 뷔페 마산에서 처음 뷔페를 먹었던 기억은 1980년대 후반인데, 초밥을 먹고 싶어하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갔었다. 뷔페가 오픈한 건물(창동 182 추정)에 설치된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아님 4층)을 올라갔었다. 당시 10살 전후였던 어린아이에게도 뷔페는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공간이었는데, 많은 디저트류를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1958년 국내에 뷔페문화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북유럽 의료지원단(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이 국립의료원(중구 을지로6가) 내에 의료인 전용 뷔페식 구내식당이 설치된 것이다. 식당명은 스칸디나비안 클럽(Scandinavian Club)이었다. 2000년대 초반 대학후배가 국립중앙의료원에 가면 뷔페식당이 있다고 했었는데, 설마하고 흘려 들었던 적이 있다. 1.. 2026. 7. 18.
[역사] 아차의 흔적, 아천 1914년 아천리(구리시)가 공식지명이 되었는데, 아천(峨川)은 다음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아차동(峨嵯洞, 아치울) : 아차산 동쪽 골짜기 마을우미천리(牛尾川里, 우미내) : 소 꼬리 형상의 골짜기 우미(牛尾)는 산 안쪽으로 길게 자리한 마을의 지형이 소꼬리와 닮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바위산임에도 소나무를 베어내도 움(牛)이 잘 튼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다. 어쨎든 아천은 산·내를 품은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면서 아천동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대 이후 아치울마을에는 많은 문학·미술·연예계 인사들이 정착했다. 1981년경 이이화(역사학자)가 자리잡았고, 박완서도 말년에는 아치울 개울가의 노란색 집에서 집필했다. 이후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면서, 자연 속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202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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