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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103

[조선] 사위가 된 말 관리인, 부마 부마(駙馬)는 황제(내지 임금)의 사위에게 주던 칭호로, 황제의 수레를 호위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전한 한무제가 설치한 부마도위(駙馬都尉)는 황제행차에서 부마를 관리하는 호위관(고위직)이었다. 부마는 실제 탑승수레를 위장하기 위해 운용한 부거(副車, 예비수레)를 끄는 말로, 점차 황실 내부인물이나 유력외척에게 주어지는 명예직 성격으로 변해갔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은 15년 만에 멸망하긴 했으나, 훗날 전한이 안정화된 왕조를 구축한 기틀을 마련했다. 전한(前漢)은 진한(秦漢)의 초기로, 진의 가혹한 법률을 완화한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민심을 얻었다. 하안(何晏, 위나라 학자)이 금향공주와 혼인하며 부마도위에 제수되었는데, 이 때부터 황제의 사위와 연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진을 거치면서 황녀와 .. 2026. 1. 13.
[조선] 한성을 중심으로 한 국도, 관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동래에 상륙한 후, 20일 만에 한양에 도달했다. 왜군은 침공 전부터 조사원을 파견하여 조선에 대한 정보(도로 사정, 하천 수위, 나루터·성 위치 등)을 파악했고, 이러한 정보를 통해 속도전(20km/일 행군)을 펼칠 수 있었다. 나고야성의 건설과 동시에 상륙지·집결지·행군로 작전계획가 이뤄졌고, 9개 군단이 이 계획을 실행했다. 사전정찰을 통해 조선의 관도체계를 파악한 후, 다음 3개의 진격로로 분산진군했다. 남동로(南東路, 제1군 고니스 유키나가) : 동래-청도-대구-선산-상주-조령(鳥嶺)-충주-여주-한양동로(東路, 제2군 기타 기요마사) : 울산-경주-죽령(竹嶺)-원주-여주-한양서로(西路,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 ): 김해-성주-김천-추풍령(追風嶺)-청주-한양조선시대 국도, 5.. 2026. 1. 11.
[조선] 잘 나가도 죽을 운명, 무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587년(선조 20), 이순신은 함경도 녹둔도에서 여진족 기병 1,000여명의 기습공격을 부상투혼으로 방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급자의 왜곡보고로 인해 피해(병졸 11명 사망, 백성 80여명 납치)에 대한 책임을 이순신이 지게 된 상황에서, 이를 보고받은 선조가 재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후 이순신은 처벌을 면하는 대신 첫 백의종군을 하게 되지만, 이순신의 투혼이 조정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은 벼슬 없이 백의를 입은 채로 군대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백의(白衣, 흰옷)는 벼슬하지 않는 평민을 의미하는 포의(布衣)로, 가장 낮은 병졸의 직분을 말한다. 하지만 백의종군이라 하여 계급강등만을 말하는 것을 아니며, 일선에서 물러나 고문역을 맡는다는 의.. 2026. 1. 6.
[서울] 병원하면 떠오르던, 청량리 1998년 1월 대학 본고사를 치르기 위해 재수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함께 친구누나 댁에 머문 적이 있다. 고속버스터미널(반포)에서 버스를 타고 마장백화점약국(용두역 북측)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뒤를 따라오던 승용차 타이어가 펑 소리와 함께 터졌던 기억이 난다. 암튼 약국 옆길(고산자로30길)을 따라 200m 정도 걸어가니, 친구누나의 집(단독주택)이 있었다. 당시 몇 일 지내면서 기억나는 건, 다음과 같다. 철도 아래의 지하보도(신답역 방면)답십리굴다리지하보도(청량리역 방면)굴다리 옆의 윤락가윤락가 옆의 성바오로병원동대문구청 도서관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답십리굴다리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굴다리에 대한 막연한 기억만 있었고, 찾을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 202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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