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도시130

[교육] 인재 선점의 기점, 고교다양화 1998~2001년 : 수능 중심, 학생부 본격 도입2002~2007년 : 전형 분화·다양화2008~2013년 :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 강화2014~2019년 : 수시 확대, 정시 축소2020~2025년 : 단순화·비교과 축소2026년 : 학생부 기록과 수시/정시 병행, 논술 확대 본고사는 대학별로 출제되는 비정형 시험(논술·실기 등)으로 서울(특히 강남권) 학생에게 유리했는데, 이는 사교육·학원 중심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방학생은 인프라(교통·정보·학원)가 부족했던 탓에 본고사에 약했으며, 실제 본고사가 시행되었던 1980~1990년대 초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낮았었다. 1998학년도부터 대학별 본고사가 완전 폐지되었는데, 이는 표준화된 수능을 통해 지방학생들의 공정한 기회 확대를 .. 2026. 5. 3.
[교육] 암기입시에서의 탈피, 수능 해방 이후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다음과 같이 변화해 왔다. 1945~1953년 : 대학별 자체시험1954~1968년(이승만) : 연합고사·본고사1969~1981년(박정희) : 예비고사·본고사1982~1993년(전두환) : 학력고사1994~1997년 :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기 해방 직후 각 대학은 자체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했다. 1954년도(이승만 정부)부터 연합고사(국가 주관)와 본고사(대학 주관)가 병행되면서, 연합고사 합격자가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1969년도(박정희 정부)부터는 전국 대학입학예비고사 합격자를 대상으로, 각 대학에서 본고사를 치렀다. 1980년 신군부는 7.30 교육개혁으로 전형을 부분적으로 복합화했는데, 시행목적은 부정입학 방지, 사교육 억제.. 2026. 5. 2.
[역사] 죽음은 정복하지 못했던, 진시황 1974년 봄 가뭄에 시달리던 시향촌 농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흙 속에서 인체 형태의 토기조각을 발견했다. 토기조각은 기원전 2세기 멸망한 진나라의 병마용(兵馬俑, 병사와 말을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었고, 용(俑, 허수아비)은 인형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병용 수가 8천명이 넘는데, 병용의 얼굴 생김새, 표정이 각기 달랐다. 채색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지만, 복식·신발까지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BC 221년 진시황(秦始皇, 진나라의 첫 황제)은 500여년 동안의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키면서,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했다. 오늘날 중국의 영어명 차이나(China)는 진(秦)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진시황은 북방 유목민족(특히 흉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했으며, 중.. 2026. 5. 1.
[역사] 조선 최상의 풍류, 담담정 중국 수나라에 처음으로 시행된 과거제도는 고려시대 들어 한반도에 도입되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과거에 매달린 이유로는 관료로서의 출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양반이라는 기득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3대에 걸쳐 과거(소과 포함) 합격경력이 없으면 양반자격을 박탈하였는데, 이를 삼대무현관(三代無顯官)이라고 한다. 양반가 자제들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과거를 위한 교육을 받았는데, 서당에서 시작하여 중등교육기관인 지방 향교(서울은 사부학당)에 들어가 소과를 준비하였다. 이전 글 조선 2인자의 픽, 정도전 집터>에서는 정도전 집터 사당자리에 중학을 설립되었음을 언급했었고, 사부학당의 당시 위치를 표시했었다. 성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과합격증이 필요했다. 소과는 진사시(시문)·생원시(사서경.. 2026. 3. 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