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도시108 [조선] 의문의 패배자, 인조 조선시대 부자(父子)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수직적이고 평화롭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니, 이는 역사·도덕시간에서 배웠던 유교적 교리와는 상반되는 현실이었다. 민간 뿐만 아니라 왕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다음과 같다. 태종 - 양녕대군선조 - 광해군인조 - 소현세자영조 - 사도세자정적을 여겨졌던 아들, 소현세자 1636년(인조 14) 겨울 발발한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2달도 채 못 버티며 항복했고, 소현세자(인조 장자)는 볼모로 청나라로 끌려간다. 소현세자는 8년 동안 청나라 인맥과 신문물을 접한 후 귀국했지만, 조선에서 2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실록에 따르면, 전신이 검은 빛이었다고 한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인조가 세자를 독살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로 알려지고 있는데, 정치.. 2025. 12. 21. [역사] 근대 문화공간, 극장 1980~90년대 창동(마산)의 밤은 화려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청소년 시절 창동은 학교로부터의 해방구였다. 창동 뒷골목에 위치한 콜라텍과 피카디리극장 자리의 나이트클럽은 젊은이들을 무아지경에 빠트렸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폐허로 남아 있다. 1990년대 마산에는 많은 영화관이 있었지만, 연흥극장에서 흥행작을 많이 상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보여 준 깐느극장의 모습에서 과거의 추억이 많이 떠올릴 수 있었다.조선 최초의 극장, 인천 협률사 1895년 정치국이 인천에 협률사(協律社)을 설립했는데, 이는 조선인이 세운 조선 최초의 민간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장·영화관이 결합한 형태로, 주로 인형극·창극·신파극·남사당패·연극이 공연되었다. 협률(協律, 서로 협력하.. 2025. 12. 11. [조선] 정치의 DNA, 비타협 현대정치에서도 이념 불문하고, 집권세력이 정적을 인정(흡수)하지 않은 채 독선에 치우치면 필히 부패(더 나아가 분열)하게 마련이다. 현대사의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조선시대 관료들의 고집스런 행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현대 정치인들이 조선정치를 깊이 공부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전제하면, 그냥 민족성이 그런가 싶다. 이전 글 공천권을 두고 시작된, 붕당정치>에서는 선조대에 이조전랑의 자리를 두고 사림파 내 선후배 간 갈등으로 동서분당이 되었다고 언급했었다. 처음이 어렵지, 분당은 계속되었다. 동서분당에 이은, 남북분당 선조대에 세력을 키우면서 위기를 극복한 기득권(동인)은 정적(서인)에 대한 처벌논조를 두고 다시 분열되는데, 이 때 동인은 다음과 같이 남북분당되었다. 강경파 북인(조식.. 2025. 12. 7. [역사] 산업혁명의 산업, 면직 산업혁명에서의 '산업'은 무엇일까. 흔히들 증기·철강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면직산업이다. 1987년 초딩 시절 일요일 아침에 마르코 폴로의 모험(일본 NHK 애니메이션)에서 흘러 나오던 중독성 있는 화음이 가끔 기억이 난다. 마르코~ 폴~로~. 1270년 전후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를 출발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샨두(원나라)를 여행했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설명(훗날 동방견문록)을 썼다. 마르코 폴로는 다음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면직물을 코로만델 해안에서 보았다향신료에 이은 최고의 무역품, 면직 19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는 가장 최상급 면직물은 인도산이었다. 코로만델(Coromandel)은 인도 동부의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안지역으로, 바니아(B.. 2025. 11. 7. 이전 1 ··· 4 5 6 7 8 9 10 ··· 2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