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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성의 월스트리트, 창곡천정 조선시대 이후 오늘날의 소공동의 행정구역은 다음과 같다. 조선 : 호현방(好賢坊, 한성부 남부) 1911년 : 소공동(경성부 남부)1914년 : 장곡천정1946년 : 소공동(서울시 중구) 고종대 호현방(好賢坊, 현인들이 좋아하는 동네)은 회현방(會賢坊, 현인들이 모인 동네)으로 개칭했는데, 현재의 회현동·남창동·소공동·정동 일부를 포괄했다. 조선시대 남촌(南村, 청계천 이남)은 경화세족들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주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들이 거주했다. 기상과 상관없이 하나 뿐인 나막신을 신고 다녔던 선비는 내지 로 불렸다. 19세기 말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은 회현방과 인접의 명례방(명동·충무로) 일대를 장악하면서 혼마치(本町)를 형성했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을 쳤던 왜성대(예장.. -
[음식] 사실상 왕립호텔, 손탁호텔 1898년 9월 김홍륙(러시아공사관 통역관)이 고종을 독살하려한 사건이 있었다. 김종화(궁궐 창고지기)가 공홍식(전선사 주사 출신)의 지시로 커피주전자에 대량의 아편을 넣었는데, 대가는 은전 1,000원이었다. 구한말 전선사(典膳司)는 궁중음식·수라·잔치 및 관련 두구를 보관·관리하던 궁내부 소속관청이었는데, 선(膳, 수라) 자가 들어 있다. 고종과 황태자(순종)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맛에 익숙한 고종은 이상한 맛에 반사적으로 구토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실신 후, 몸에 중독증상으로 의심되는 이상현상(혈변·치아상실 등)을 겪었다. 김홍륙은 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을 잃은 후에 유배형(흑산도, 공금횡령 혐의)에 처해졌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을 독살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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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판결에 앞서, 중재 2026년 8월 황정민(배우)와 40대 여성 간의 법정다툼이 이슈이다. 2025년 8월 황정민이 여성을 고소(스토킹 혐의)했는데, 2026년 2월 여성이 법원의 약식명령(벌금 300만원)에 불복하면서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11월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여성에게 벌금 1,000만원(이수명령 포함)을 구형했는데, 여성 입장에서는 정식재판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형사건이 정식재판으로 이어진 2026년 2월, 여성은 황정민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소가 2억원 규모)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민의 제안으로 소주 브랜드 사업 및 소설·시나리오 집필 등 실무를 맡았으나, 정당한 보수와 대가를 받지 못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2026년 6월 법원이 조정절차.. -
[역사] 우장춘의 이종사촌, 구용서 1895년 우범선·구연수는 일본 낭인(자객)들과 공모하여 궁궐에 진입한 후, 명성황후(민비) 시해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고종·민비가 역대급으로 부패한 왕족이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은 명백한 국권침탈이다. 물론 국권을 내세울 국력 조차 없었기에, 큰 시대흐름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흐름을 읽고 강대국의 앞잡이가 된 우범선·구연수는 당대 최고의 기회주의자(친일파)로 평가받을 만 하다. 당시 우범선은 군대 고위간부(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였는데, 미우라 고로(일본 공사)에게 포섭되어 시해작전에 조선군대를 직접 동원하면서 궁궐 침입을 주도했다. 우범선은 증거인멸을 위해 민비 시신을 이불에 싸서 옮기고 석유를 뿌려 태우라는 지시·감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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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부분이 정독도서관, 화동 화동은 조선시대 장원서에서 유래되었는데, 장원서(掌苑署)는 절기에 맞춰 궁궐에서 사용할 과실·꽃·나무를 키우던 관서였다. 또 다른 설로는 원래 화기동(火器洞)이었던 것이 화개동으로 음이 변했다는 유래가 있는데, 당시 총포를 만드는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위치했었다고 한다. 오래된 도시 내의 드넓은 부지에는 역사적 사건의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인데, 현재의 정독도서관 부지가 저토록 넓게 확보된 계기는 갑신정변이었다.갑신정변 가담한 역적의 재산은 국가에 몰수되었고, 집은 헐렸다. 김옥균·서재필은 정독도서관 부지에 살았는데, 현재 서울교육박물관(1927년 신축 추정) 부지가 김옥균의 집터로 추정된다. 1872년 22세의 김옥균은 문과(알성시)에 장원급제하여, 그 해 성균관에서 도서출납을 담당하는 전적(典籍,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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