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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미국] 남북전쟁의 불씨, 관세

by Spacewizard 202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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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집권한 중국공산당은 신장지구을 농업적으로 중요시했고, 1960년대 이후 목화재배를 본격화했다. 목화재배량이 크게 증가한 시점은 1980년대 이후 농기계가 도입된 이후로, 그 전까지는 수작업에 의존했다. 2020년대 들어 신장산 면화는 세계공급량의 23%(연 500만톤)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 내에서도 면화생산량의 90% 이상이 신장지구에서 생산된다. 세계적인 의류생산·수출국(베트남·캄보디아·방글라데시 등)들도 신장산 면화를 수입·생산한다.

 

이전 글 <한때 한반도 외교를 이끈, 위구르>에서는 2010년대 들어 시진핑 집권기에 신장위구르에 대한 탄압의 강도가 더 세지고 있으며, 서방에서는 이에 대한 제재를 통해 신장산 면화사용 규제에 들어갔다고 언급했다. 과거 면화산업이 강했던 신장이 향후 재생에너지산업의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나타날 변화가 주목된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태양광 발전의 요충지로, 북부의 사막지대(토지·일조량)를 활용한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신장의 태양광 발전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된 산업, 목화

목화(木花, 면화·초면)는 남위 35도와 북위 37도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자라는 식물로, 생육기간 동안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되고 200일 이상 서리가 내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목화가 자라지 못했다. 5천여년 전 인도에서 방적기술이 개발되어싿고 전해지는데, 사실 방적기술은 고대문명(인도·이집트·중국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방직(紡織)목화로 천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방적(紡績, spinning) : 천연섬유를 로 만드는 모든 과정

방사(紡絲, extrusion) : 인조섬유를 로 만드는 모든 과정

직조(織造, weaving) : 실을 엮어내 직물을 만드는 작업

방적은 꼬아서 실은 만드는 반면, 방사는 견섬유(실크)·합성섬유를 용해한 후 작은 구멍(노즐, spinneret)을 통해 필라멘트사(filament yarn)를 뽑아낸다. 방사를 필라멘트 스피닝(filament spinning)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면화·면직물 생산을 위한 기술혁신은 주로 중국·인도에서 일어났는데, 원통형 씨아(솜에서 씨 제거), 물레(면화에서 실 뽑기), 직기(수직식·디딤판)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 중반 중국·인도에서 생산되는 면화량은 세계 생산량의 70%에 육박했다. 면직물 제조작업은 초기 가내수공업 형태에서 점차 대규모 공장 형태로 전환되었는데, 14세기 명나라에서는 수 천명이 근무하는 도시 내 면방직공장가 등장했다. 인도에서도 직업방직공이 출현하여 궁정납품용·수출용으로 모슬린(muslin, 표백하지 않은 흰색면사)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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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량 증가로 인한 고민거리, 관세


19세기 초반 유럽 각국이 산업혁명에 성공하면서, 공산품의 생산 증대와 함께 무역(수출·수입)이 활발해졌다. 각 국들은 무역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관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가, 결국 19세기 초중반 유럽국가들 간에는 자유무역을 추진하기 위해 관세를 낮추는 협정들이 체결되기 시작했다. 당시 다음과 같은 관세인하 협정이 있었다.

 

1846년 곡물법(Corn Laws) 폐지
1860년 코브덴-슈발리에 조약(Cobden–Chevalier Treaty)


1846년 영국 총리(로버트 필)은 곡물수입에 대한 높은 관세와 수입제한을 폐지했는데, 식량가격 하락이 하락하면서 노동자 생활의 개선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1860년 영국(리처드 코브덴)과 프랑스(미셸 슈발리에)는 양국 간의 관세 인하와 최혜국 대우조항을 담고 있는 조약을 체결한 이후, 유럽 각국들이 연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19세기 중후반 자유무역 분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미국 내전과 부흥의 트리거, 관세

 

1860년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자유무역 기조가 퍼졌지만, 미국은 달랐다. 1860년 대선에 당선된 링컨은 의회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는데, 링컨은 미국역사에서 관세정책을 가장 잘 활용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보호주의 관세를 통해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가 될 것이다

1861년 3월 저스틴 모릴 의원(공화당)이 발의한 모릴 관세법(Morrill Tariff)은 기존 대비 2~3배 인상한 관세율을 담고 있는데, 이 법안은 북부 제조기업과 공화당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링컨의 당선 이후 남부 출신 의원들이 의회를 떠난 상황에서, 북부 상·하원은 손쉽게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47~49% 수준으로 높아졌고, 이는 미국 남북전쟁의 트리거가 되었다.


관세법이 발효된 지 2달도 되지 않은 1861년 4월 12일, 관세법에 극렬히 반대하던 남부동맹은 관세관청이 있던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섬터 요새(Fort Sumter)는 찰스턴(Charleston, /span>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요새로,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에 구축되었는데,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북부연방에서 탈퇴한 상태였다. 현재 섬터 요새는 국립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은 찰스턴 다운타운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량 이동하여 입도한다.

섬터 요새 공격 [출처:Google Art & Culture)

당시 남부는 농업(특히 목화) 중심 경제로 해외(영국 등)로부터 제품을 수입하는 구조였기에, 고율관세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보통 남북전쟁이라 하면 노예제를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관세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링컨은 남부에 노예문제를 양보했지만, 관세문제에 대해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흔히 링컨은 노예문제를 해결한 인물이라고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대통령 당선 직후까지도, 링컨의 정치적 목표는 노예제의 즉각적 폐지가 아닌 점진적 종식이었다. 즉 신영토(서부)로의 노예제 확산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북전쟁과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했다.

 

이전 글 <금리인하 경쟁의 단초, 관세>에서는 관세 부과가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1913년까지 미국은 50년 이상 고율관세를 유지하면서 국내 제조업을 육성했고, 19세기 미국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관세가 차지했다. 이후에도 1945년까지 미국은 관세율을 32% 이하로 떨어트린 적이 없었다. 링컨의 관세정책은 20세기 초반 미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데 큰 발판이 된 것이다.

 

19세기 미국은 고관세정책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디플레이션을 겪지는 않았다. 국내 산업의 보호와 생산기술 발전으로 인해 제조업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내수시장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관세를 통해 확보한 재정은 경기부양책과 인프라 투자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시중유동성을 확대시켰다. 2025년 트럼프의 관세정책에서 링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과연 디플레이션 부작용 없이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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