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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130

[조선] 어머니와 북녁에 묻힌, 정종 조선왕릉 중 북한 내에 위치한 2개(후릉·제릉)의 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서 제외되어 있다. 2개의 릉에는 정종과 그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데, 이는 개국 초기 여전히 개경이 정치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엿보여 준다. 1419년(세종 1) 63세의 정종은 죽음을 맞이하는데, 태종·세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안왕후와 함께 후릉(厚陵, 개성)에 합장되었다. 현재 후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판문군(구 개풍군) 영정리 백마산 기슭에 위치하는데, 이는 정종이 퇴위 후에 거쳐했던 인덕궁 근처이다. 1412년(태종 12) 정안왕후가 먼저 안장된 후, 1420년(세종 2)에 난간석으로 봉분을 연결하여 쌍릉이 되었다. 제릉(齊陵)은 이성계의 원비(신의왕후 한씨)의 단릉으로, 현재 개성특별시 판문군(구 개풍군) 해선리(풍.. 2026. 1. 24.
[조선] 5개 관도의 세분, 대로 이전 글 한성을 중심으로 한 국도, 관도>에서는 조선시대 한성에서 5개의 방향으로 연결된 국도체계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5개의 관도는 10개의 대로로 세분화되기도 했다.1로(의주로) : 북방의 군사·외교적 간선2로(경흥로) : 북동쪽 국경(두만강)과 연결3로(관동로·평해로) : 관동과 연결4로(중부로) : 중부(충주·제천·단양·봉화)로의 연결5로(영남대로) : 영남(대구·동래)로 연결된 남부간선6로(기호로) : 경기·호서과 연결7로(호남대로) : 서남부(호남)과의 연결8로(충청수영로) : 충청수영(보령현)과 연결하는 해안로9로(서해안로) : 서해연안(황해·평안·경기)과 연결하는 해안로10로(삼남대로·제주로·해남로) : 한·제주를 잇는 가장 짧은 길북동남서로 뻗은 대로, 조선조선에서 가장 중시했던 도로는.. 2026. 1. 19.
[일제] 10월 혁명의 여파, 한인사회당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지속되는 와중에 토지개혁 지연과 경제난은 민중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이 틈을 타서 볼셰비키는 다음의 모토를 내세워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 세력을 규합했다. 전쟁 중지토지 몰수공장 노동자 관리 이전 글 변화되어 온 혁명사상, 공산> 1917년 볼셰비키혁명(10월 혁명, 러시아 혁명)은 볼셰비키가 이끈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마르크스 사상을 현실국가에 적용한 최초의 사례라고 언급했었다. 10월 혁명은 5년 후인 1922년 소련(소비에트연맹)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그 사이에 러시아 내전(1917~1922)을 초래했다.혁명의 처음과 끝을 다룬,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닥터 .. 2026. 1. 18.
[조선] 사위가 된 말 관리인, 부마 부마(駙馬)는 황제(내지 임금)의 사위에게 주던 칭호로, 황제의 수레를 호위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전한 한무제가 설치한 부마도위(駙馬都尉)는 황제행차에서 부마를 관리하는 호위관(고위직)이었다. 부마는 실제 탑승수레를 위장하기 위해 운용한 부거(副車, 예비수레)를 끄는 말로, 점차 황실 내부인물이나 유력외척에게 주어지는 명예직 성격으로 변해갔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은 15년 만에 멸망하긴 했으나, 훗날 전한이 안정화된 왕조를 구축한 기틀을 마련했다. 전한(前漢)은 진한(秦漢)의 초기로, 진의 가혹한 법률을 완화한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민심을 얻었다. 하안(何晏, 위나라 학자)이 금향공주와 혼인하며 부마도위에 제수되었는데, 이 때부터 황제의 사위와 연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진을 거치면서 황녀와 ..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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