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슬픈 여인들의 공간, 이태원
조선 초기 목멱산(木覓山, 현 남산) 남쪽의 이태원은 뜨내기가 많은 번잡한 마을이었는데, 원(院, 출장관원의 숙박시설)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태원은 산수가 수려한 공간으로, 도성 안의 부녀자들은 빨래를 위해 자주 찾기도 했다고 한다. 이태원은 왜군의 흔적이 많은 공간인데, 이는 43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1592년 한성을 점령한 가토 기요마사는 운종사(雲種寺, 현 이태원 인근 비구니사찰)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오랜 전투에 몸이 지친 가토는 잠자리에서 여자가 생각났는데, 당시 전쟁통에서 기생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왜장들은 비구니들은 범한 후, 운종사를 불태웠다. 윤경산 자락에는 마을의 안녕을 빌던 부군당이 있었고, 비구니들은 부군당 주변에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2026.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