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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130

[부동산] 건축과 도시의 통합, 지구단위계획 역세권 오피스텔 공사 중에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은 기존 인허가 받은 용적률보다 나은 조건일 경우가 많다. 이미 착공했더라도 변경된 지구단위계획을 따른 설계변경을 통해 용적률을 상향할 수 있다. 다만 단점이 따를 수 있기에 분석·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설계변경 인허가를 다시 득하는 시간이나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하는 시간이 요구될 수 있는데, 공사기간이 늘어남에 따른 지체상금·금융이자를 감안해야 한다. 2000년 도입된 지구단위계획 제도는 과거 2개의 제도가 합쳐진 것이다. 도시설계 : 건축규제 중심(입체적 건축계획)상세계획 : 도시계획 중심(평면적 토지이용계획) 1980년 건축법에 도시설계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이는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미관을 개선하고 개발밀도를 관리하기.. 2026. 8. 20.
[서울] 슬픈 여인들의 공간, 이태원 조선 초기 목멱산(​木覓山, 현 남산) 남쪽의 이태원은 뜨내기가 많은 번잡한 마을이었는데, 원(院, 출장관원의 숙박시설)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태원은 산수가 수려한 공간으로, 도성 안의 부녀자들은 빨래를 위해 자주 찾기도 했다고 한다. 이태원은 왜군의 흔적이 많은 공간인데, 이는 43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1592년 한성을 점령한 가토 기요마사는 운종사(雲種寺, 현 이태원 인근 비구니사찰)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오랜 전투에 몸이 지친 가토는 잠자리에서 여자가 생각났는데, 당시 전쟁통에서 기생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왜장들은 비구니들은 범한 후, 운종사를 불태웠다. 윤경산 자락에는 마을의 안녕을 빌던 부군당이 있었고, 비구니들은 부군당 주변에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2026. 8. 18.
[서울] 경성의 월스트리트, 창곡천정 조선시대 이후 오늘날의 소공동의 행정구역은 다음과 같다. 조선 : 호현방(好賢坊, 한성부 남부) 1911년 : 소공동(경성부 남부)1914년 : 장곡천정1946년 : 소공동(서울시 중구) 고종대 호현방(好賢坊, 현인들이 좋아하는 동네)은 회현방(會賢坊, 현인들이 모인 동네)으로 개칭했는데, 현재의 회현동·남창동·소공동·정동 일부를 포괄했다. 조선시대 남촌(南村, 청계천 이남)은 경화세족들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주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들이 거주했다. 기상과 상관없이 하나 뿐인 나막신을 신고 다녔던 선비는 내지 로 불렸다. 19세기 말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은 회현방과 인접의 명례방(명동·충무로) 일대를 장악하면서 혼마치(本町)를 형성했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을 쳤던 왜성대(예장.. 2026. 8. 17.
[역사] 우장춘의 이종사촌, 구용서 1895년 우범선·구연수는 일본 낭인(자객)들과 공모하여 궁궐에 진입한 후, 명성황후(민비) 시해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고종·민비가 역대급으로 부패한 왕족이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은 명백한 국권침탈이다. 물론 국권을 내세울 국력 조차 없었기에, 큰 시대흐름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흐름을 읽고 강대국의 앞잡이가 된 우범선·구연수는 당대 최고의 기회주의자(친일파)로 평가받을 만 하다. 당시 우범선은 군대 고위간부(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였는데, 미우라 고로(일본 공사)에게 포섭되어 시해작전에 조선군대를 직접 동원하면서 궁궐 침입을 주도했다. 우범선은 증거인멸을 위해 민비 시신을 이불에 싸서 옮기고 석유를 뿌려 태우라는 지시·감독을 했다...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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