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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금융] 13년이라는 짧은 역사, 종금사

by Spacewizard 2026.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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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는 국내 유동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고, 이에 따라 기업이 개인에게 단기자금(고금리)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제도권 금융기관이 기업의 자금수요를 뒷받침할 수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사금융시장은 기형적으로 발달했고, 기업들은 고금리에 시달렸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기업사채를 동결하는 8·3조치를 시행한 후,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구했다. 은행이 기업의 장기자금을 주로 맡고 있었기에, 단기자금(급전)을 조달할 창구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단기금융업법이 제정된 후, 이 법에 근거하는 투금사(투자금융회사)가 신설되었다. 투금사는 기업어음을 주로 취급했는데, 훗날 업종전환 전까지 단자사(短資社, 단기자금회사)로도 불렸다. 이전 글 <부동산으로 부활한 재벌, 율산>에서 율산이 사우디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돌게 되자, 단자사가 자금회수에 나섰다고 언급했다. 당시 율산은 단기자금으로 장기고정투자를 했기에 듀레이션 매칭이 되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신설한 기관은 다음과 같다.

 

단자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위 3개 회사의 근거법을 사금융 양성화 3이라 불렀으며, 큰손(자금력 있는 개인)은 합법적으로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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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라는 짧은 역사, 종금사

 

1976년 종합금융회사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종금사(종합금융회사)는 단자사 업무 외에 장기대출·외환·신탁 등을 추가로 겸영했다. 1990년대까지 종금사는 금융백화점(CP·리스·신탁·외환 등)으로 불리면서, 서울대 출신과 상경계열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직장이었다. 그 만큼 고연봉(당시 1,500만원)과 높은 보너스를 받는 꿈의 직장이었다.

 

1993~1994년 김영삼 정부는 지방 단자사를 종금사로 전환하는 정책을 세웠고, 이에 24개의 단자사가 종금사로 일괄전환되었다. 하지만 단자사 전환정책은 부실확대의 원인이 되었고, 외환위기로 인해 부실이 폭발했다. 1998년 단자사에서 전환된 종금사 중에서 16개가 폐쇄되었고, 1999년 종금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잔여 종금사는 증권·은행으로 흡수되었다. 

 

1998년 1차 폐쇄(10개) : 경남·경일·고려·삼삼·신세계·쌍용·청솔·한화·향도·신한

1998년 2차 폐쇄(6개) :대구·삼양·새한·제일·한길·한솔

 

1999년 정리된 종금사(14개)

한불 : 훗날 메리츠종금

금호 : 훗날 우리종금

동양·리젠트·현대울산 : 동양증권 합병;

한국·한스·중앙·영남 : 하나로종금 합병;

LG :  LG투자증권 합병
한외 : 한국외환은행 합병
​현대 : 강원은행 합병
​대한 : 퇴출
​나라 : 폐쇄

 

이전 글 <추억 속의 고품격, 성안백화점>에서 김인태는 사세를 확정하면서 동남그룹(경남종금 포함)으로 성장했으며, 1994년 투금사를 종금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치인과의 친분이 작용했었다고 언급했었다.

 

한불·금호는 지방 단자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부실로 폐쇄대상에서 제외되었고, 1999년 종금사 제도 폐지 이후에도 독립생존을 유지했다. 2006년 메리츠증권이 한불종금을 인수한 후, 2010년 메리츠종금과 합병했다. 2013년 우리금융이 금호종금을 인수한 후 우리종금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결과적으로 종금사 30개 대부분이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공적자금 12조원이 투입되었다. 이전 글 <메리츠의 뿌리, 한진>에서는 미담확약의 경쟁력에서 증권사는 종금사를 따라 올 수 없는 환경이었고, 메리츠종금증권은 경쟁자 없는 미담확약시장에서 급성장했다고 언급했다.

 

부실을 가속화한, 정부

 

김영삼 정부는 24개 지반 단자사를 종금사로 전환한 후에도 감독체계를 완비하지 못했다. 종금사의 자금조달 창구는 예금 대신 다음과 같았는데, 70% 이상이 발행어음으로 조달되었다. 

 

어음(콜·RP 포함) 발행

단기외화 차입

고객예탁금(IMA) : 기업 여유자금 예탁

CP 할인

증자 : 후순위채·자기자본

종금사는 단기(3개월) CP를 10~12% 금리로 발행한 후, 은행·개인에게 판매했다. 그 다음으로는 해외달러를 단기 저금리(2~3%)로 차입한 후, 원화 장기대출(5년)을 취급하면서 금리차익(2~3%)을 추구했지만, 만기불일치 리스크를 고려하지 못했다. 이렇게 누적된 종금사 부채는 33조원(외채 6조 포함)에 달했고, 외환위기라는 트리거로 인해 한순간에 폭발했다. 뿐만 아니라 부실CP를 위조·가공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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