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서울시가 서울고속버스터미널(반포동) 부지 복합개발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터미널 지분을 보유한 천일고속 주가가 10배 가량 상승했다. 2024년 말 기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구조는 다음과 같다.
신세계센트럴시티 70.49%
천일고속 16.67%
동원로엑스(동원산업 계열) 11.11%
신선호 1.56%
동양고속 0.17%
신선호는 유일한 개인주주이면서, 신세계센트럴시티(비상장)의 지분 38.14%를 가지고 있다. 서울도시계획이야기(손정목 저) 제3권에서는 율산에 대한 언급이 있다. 1960년대까지 서울시내 시외버스터미널은 지역마다 별도의 회사가 있었으나, 서울시가 이를 하나로 통합(강남)했다. 1970년 전후만 하더라도 영동(현 강남, 영등포 동쪽)은 미개발지였으며, 영동에 덩그러니 놓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서울시민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시는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의 아파트 개발을 서둘렀고, 그 결과 3호선 노선이 ㄷ자로 우회하게 된다.
역대급으로 빠른 성장, 율산
1970년대 율산(栗山, 밤나무 산)은 단기간에 재벌로 창업 4년 만에 부도를 맞이한 신흥기업이었다. 1975년 신선호는 동창(경기고·서울대) 5명과 함께 율산실업(자본금 100만원)을 창업한 후, 남대문 그랜드호텔 한 호실을 사무실로 임차·사용했다. 당시 남대문 근처는 상사·사금융들이 밀집하여 정보교환이 용이했는데, 율산실업은 내수용 제조업이 이미 포화상태라고 판단하여 수출계획을 세웠다. 중동건설 붐으로 인해 국내 건축자재(시멘트·철근)를 수출하기 좋은 시절이었다.
율산은 시멘트 첫 수출길에서 항만사정으로 하역을 못하게 된 일이 있었지만, 헬리콥터·LST(상륙함) 등을 동원하면서까지 납기를 맞추면서 중동바이어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이후에도 율산의 젊은 경영진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업에 접목하고 했다. 하역효율을 높이기 위해 해운선사를 거치지 않고 배를 직접 빌려서 수출하면서 큰 이윤을 얻기도 했다.
창업 첫해 시멘트 수출로 340억 달러 수출실적을 거둔 율산실업은 신진알미늄을 인수했다. 1976년 금룡해운·동원건설을 인수하면서 4,300만 달러 수출실적을 거뒀다. 1977년 5개 회사를 추가로 인수하였고 16,500만 달러 수출실적을 거뒀다. 1977년 말 율산실업의 부채비율은 정부의 대출지원에 힘입어 2,600%(자기자본 12억, 부채 313억) 수준에 달했다. 1978년 율산은 창업 4년 만에 대기업그룹(14개 계열사, 27개 해외지사, 6개 합작법인)으로 성장했고, 국내 13번째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었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 했던, 기업
율산의 급성장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의 수출보국정책에 따른 특혜가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특혜성 대출이다. 외국바이어로부터 신용장만 받아오면, 이 신용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현금인출이 즉시 가능했다. 신용장(LC, Letter of Credit)는 수입업자를 대신하여 수입업자 거래은행에서 수출업자가 발행하는 환어음의 결제를 보증하는 문서로, 국제무역거래에서 현실적으로 서로 간의 신용상태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고안되었다. 율산은 대기업이 외면하던 저단가 신용장을 과감하게 확보하면서, 틈새를 찾았다.
수출업체에게는 신용장만 있으면 은행에서 저리대출(6% 수준)을 해줬고, 이는 일반금리(25% 수준)에 비해 20% 가량 낮은 수준이었다. 대출실행만으로도 20% 가까운 이자수익을 취할 수 있는 특혜였다. 문제는 율산을 급성장시킨 레버리지(대출)은 부메랑으로 돌아 왔는데, 심지어 그 트리거는 루머였다. 1978년 율산실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불법적으로 유통업을 하다가, 현지에서 벌금을 내는 일이 일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율산이 사우디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돌게 되고, 단자사가 자금회수에 나섰다. 율산은 당시의 수출기업들이 그러했듯이, 자금관리능력이 미비했다. 즉 단기자금으로 장기고정투자를 했기에, 듀레이션 매칭이 되지 않았다. 단자사가 원금상환을 요청하면, 묶인 자금으로 인해 자금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8.8 부동산투기억제 조치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소라아파트(율산건설)의 분양이 저조했다. 1978년 9월 주거래은행(서울신탁은행)에게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2차례에 걸쳐 받은 70억원 가량의 구제금융은 단자사 채무상환으로 소진되었다. 이전 글 <계속되는 시행착오, 부동산신탁>에서는 1976년 8월 서울은행이 한국신탁은행을 흡수합병하면서 서울신탁은행이 출범했다고 언급했다. 결국 1979년 2월 율산은 은행관리에 들어간다. 직전 달인 1월 25일 신선호는 납치기도를 당하기도 했는데, 수사 결과 3명의 범인은 돈을 노리고 청와대 비서실을 사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 날 26일 신문지상에 청와대 비서실이 부각되면서, 비서실장의 심기는 불편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채권은행단은 검토 중이던 90억 수준의 자금지원을 갑자기 백지화했다. 실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재벌그룹들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망한 재벌오너를 살린 건, 부동산
결국 1979년 4월 신선호가 구속(업무상 횡령 및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되고 3일이 지나자, 율산그룹 전계열사가 일괄 부도처리됐되었다. 율산은 정책수혜를 받아 급성장한 기업이 정권실세에 의해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율산은 그룹 차원의 컨트럴타워가 부재하여, 자금수급계획도 부실했었다. 1976년 서울종합터미널 부지 18,700평 가량을 서울시로부터 매입·개발하고자 했으며, 구제금융 요청 직전인 1978년 8월 잠실쇼핑센터 부지를 매입하는 계약을 서울시와 체결했다. 자금경색과 부동산 시장만 좋았어도, 율산그룹은 롯데그룹 못지 않는 부동산그룹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1975년 구자춘(당시 서울시장)은 도심 집중을 완화하고 강남을 개발하기 위해 다음의 종합버스터미널 계획을 세웠다.
고속버스터미널(강남종합버스정류장) : 3만평
시외버스터미널(서울종합터미널) : 2만평
1976년 4월 고속버스터미널 기공식을 개최한 후 공사 중 고속버스 노선을 가동했고, 5개월이 지난 9월에 가건물 형태로 임시준공을 득했다. 하지만 고속버스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시외버스터미널을 고속버스터미널로 계획을 수정하게 된다. 시외버스터미널 부지를 인수한 율산은 20층 규모의 터미널을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자금난으로 인해 계획을 축소해야 했다. 결국 1978년 3월 대합실·정비고 정도 갖춘 3층 규모의 호남선터미널을 완공했고, 이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착공하여 1981년에 준공했다.
1979년 4월 율산이 부도난 이후에도, 신선호는 호남선터미널을 계속 소유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서울시가 소유권이전등기 시점을 완공시로 하며 제3자 양도를 금지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신선호는 누추한 호남선터미널은 16년 동안 운영하다가, 2000년 센트럴시트를 준공(1994년 착공)했다. 센트럴시티는 신선호가 개발한 복합건물명이자 소유·운영하는 법인으로, 신세계백화점·메리어트호텔·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이 들어 있다. 신선호는 센트럴시티 완공 이후 재무위기를 처했고, 2002년 센트럴시티 지분 39% 가량을 경영권과 함께 아이앤알(I&R)코리아(기업구조조정조합, 애경유화 출자)에 매각했다.
I&R은 인수 3개월 만에 지분을 메테오(Meteor Limited, 말레이시아 투자펀드)에 매각했다. 메테오는 센트럴 지분을 확보하면서, 신달순(용평리조트 사장)을 센트럴시티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위노바(Winova JV Ltd, 룩셈부르크 투자펀드)가 센트럴시티 지분을 매수하면서, 메테오·위노바는 센트럴시티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게 된다. 메테오·위노바의 투자자가 통일교 재단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문선명이 죽은 후, 신세계는 센트럴시티 지분 60%를 인수하면서 계열사로 편입했다. 신선호는 여전히 신세계센트럴시티 지분 38.1%(평가액 1조원 이상)을 보유한 2대 주주로, 다가오는 2026년 선거철을 맞아 수 조원대 재벌 반열에 오르고 있는 중이다. 신선호를 통해 2가지를 느낀다.
재벌은 망해도, 재벌이 될 수 있다 → 물론 아닌 경우가 훨씬 많음
알짜배기 서울 부동산을 버틸 수만 있다면, 버텨야 함 → 대부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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