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대학 본고사를 치르기 위해 재수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함께 친구누나 댁에 머문 적이 있다. 고속버스터미널(반포)에서 버스를 타고 마장백화점약국(용두역 북측)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뒤를 따라오던 승용차 타이어가 펑 소리와 함께 터졌던 기억이 난다. 암튼 약국 옆길(고산자로30길)을 따라 200m 정도 걸어가니, 친구누나의 집(단독주택)이 있었다. 당시 몇 일 지내면서 기억나는 건, 다음과 같다.
철도 아래의 지하보도(신답역 방면)
답십리굴다리지하보도(청량리역 방면)
굴다리 옆의 윤락가
윤락가 옆의 성바오로병원
동대문구청 도서관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답십리굴다리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굴다리에 대한 막연한 기억만 있었고, 찾을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맵의 로드맵이 활성화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 전농동에 위치한 재개발 사업지를 임장하던 중에 익숙한 곳이 눈에 들어 왔는데, 13년 만에 본 답십리굴다리였다. 이전 글 <지금과는 딴판, 왕십리·마장동>에서 왕십리역 청량리역 구간은 군사용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아마도 답십리굴다리는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1911년 청량리역이 운영된 이후, 일제강점기 청량리는 경성과 강원도를 잇는 중요한 철도허브의 역할을 했다. 1936년 중앙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청량리역 주변은 대규모 개발이 요구되었다. 일제는 1936년 이후의 인구증가에 대비하여 도시확장계획(조선시가지계획령)을 수립했는데, 여기에 청량리 지구가 포함되었다. 이 때 청량리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현대적인 주거지역으로 거듭났는데, 주로 일본인을 위한 관사와 조선인을 위한 도시한옥이 건설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관료를 위한 주거문제 해결하기 위해 관사(官舍)를 건설했고, 도시한옥은 전통한옥을 도시에 맞게 개량한 형태였다. 이전 글 <일제 도시개발의 한 축, 관사>에서는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직 중에서 가장 큰 부서가 철도국이었고, 전국의 철도교통 요충지에는 최대 수백 동에 달하는 관사단지가 조성되었다고 언급했었다.
청량리 하면 생각나는, 병원
일제강점기 청량리를 대표하는 비주거시설로는 의료와 관련된 공간이 있었다. 1920년대 미주아파트 자리에 경성제국대학 예과 캠퍼스가 들어섰고, 1930년대 현재의 삼육서울병원 전신이 자리잡았다. 청량리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빈민·행려환자가 밀집했었던 공간이었기에, 청량리 하면 떠오르는 병원이 몇 개 있었다.

1945년 8월 최신해는 청량리뇌병원을 개원했는데, 해방 이후 국내 1호 정신병원(280병상)이었다. 이중섭·천상병이 입원하기도 했었다. 1980년 청량리정신병원으로 개명한 후, 500병상으로 확장하면서 일반인 강제수용 논란으로 악명 높았다. 2018년 청량리정신병원은 재정난으로 폐업했으며, 2025년 현재 오피스텔(노인복지관 포함)로 재개발하기 위해 철거가 완료된 상태이다.
청량리역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는 성바오로병원(가톨릭중앙의료원 계열)이 있었는데, 저소득층 중심의 서민병원을 표방했었다. 1944년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제기동에서 성모의원(시약소)으로 개원했으며, 1957년 현재의 청량리역 6번 방면으로 이전했다. 시약소(施藥所, 약을 베푸는 곳)는 조선 말기 천주교회가 설치한 의료기구로, 가난한 환자들에게 약재 무료배포와 함께 간단한 치료를 제공했다. 1884년 모방이 명동 일대에서 조선 최초의 시약소를 설치했었다. 1962년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병원운영권을 유지하면서,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체계에 편입되었다. 2019년 은평성모병원 개원과 함께 폐원했으며, 현재는 STS개발이 오피스텔 개발을 완료한 상태이다.
삼육의 본체, 이북
1908년 러셀(Russell Riley, 노설)은 순안군(평안남도)에서 초가 1채를 40원에 매입하여 순안병원을 설립했는데, 러셀은 미국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안식교·재림교)의 의료선교사였다. 이후 미국총회의 지원으로 병원건물을 신축한 후, 1930년까지 조선 북부를 대표하는 선교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1914년 순안군은 평원군에 흡수되었다가, 1972년 평양시에 순안구역으로 편입되었다. 순안국제공항은 북한 내 유일한 국제공항이며, 2025년 6월 순안구역에서 방사포 10여발이 발사되기도 했다.
1929년 류제한(George H. Rue)이 순안병원장(5대)로 취임한 후, 1931년 소공동(경성)을 거쳐 인사동에 진료소를 설치했는데, 1932년 경성요양의원(경성분원 성격)으로 공식개원했다. 1936년 경성요양의원은 휘경동 부지(현 삼육서울병원 자리)를 매입·신축(간호양성소 포함)한 후, 경성요양원으로 확장이전했다. 1947년 서울위생병원으로 개명한 후, 62년 만인 2009년 삼육서울병원으로 개칭했다. 1941년 류제한은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되면서 병원사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위생병원 병원장을 맡았다. 1948년에는 대통령(이승만) 주치의로 활동한 바 있다.
교회가 교리를 전파하는 주요 수단으로 도서(출판)을 활용하기도 했다. 1909년 재림교는 순안에서 전도지를 인쇄하기 위한 교내 출판부를 만들었고, 그 해 9월 월암동(경성)으로 이전했다. 1912년 청량리(현 시조사삼거리 앞)으로 이전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20년 한국 최초로 고속인쇄기 도입했고, 1923년 잡지(시조월보)의 제호를 시조(時兆)로 변경하면서 출판사명도 시조사로 개명했다. 1930년 화재가 크게 발생했으며, 1944년에는 일제의 종교탄압으로 잡지가 폐간·몰수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2016년부터 파주 제2사옥을 운영 중이며, 2017년 서울 본사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성제국대학 뒤를 이은, 미주아파트
청량리에 한림대 계열의 성심병원이 있기는 했으나, 현재의 서울성심병원은 한림대와는 독립적인 병원이다. 1991년 이송은 답십리에 정형외과병원(60병상)을 개원한 후, 1995년 청량리에 서울성심병원으로 확장이전한 것이다.
현재의 미주아파트는 청량리의 오랜 역사로 기억되고 있지만, 주거시설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학교부지였다. 사실 이 붉은 벽돌건물은 경성제국대학 예과 캠퍼스(1924년 개교) 본관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청량리역·영휘원 사이에 위치한 소나무가 울창했던 피서지였다. 당시 경성제국대학은 단 2개의 학부(법학부·의학부)만 설치했는데, 이는 식민지 개발에 실질적 이익이 되는 학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더불어 조선인에게 과학·기술 이론교육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앞둔 1938년 일제는 이공학부 신설을 결정했고, 1941년 공릉동(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부지)에 이공학부를 설치했다.
해방 이후 청량리 예과 캠퍼스는 서울대 의예과로 전환되어 사용되다가, 1966년 과학관(동숭동)이 준공되면서 더 이상 학교건물로 이용되지 않게 된다. 참고로 동숭동에 경성제국대학 본부가 들어선 시기는 1931년이다. 청량리 의예과 캠퍼스는 1970년까지 공무원 연수원으로 활용되다가, 1971년 총무처가 본관건물을 서울동산병원와 불하계약(1975년 정식불하)을 맺었다. 총무처는 의예과 캠퍼스 잔여부지(소나무숲 포함)는 라이프주택개발이 매입하여 미주아파트를 개발(1978년 준공)했다. 1975년 서울대 캠퍼스는 관악으로 이전했다.

1971년 의예과 본관건물에 개원한 서울동산병원은 추가부지를 확보한 후 동산의료재단으로 허가(1976년)를 득했으나, 운영난으로 추가부지에 대한 대금납부를 못하고 있었다. 이에 동산의료재단은 윤덕선(재단이사)에게 인수를 제안하면서, 성심재단이 동산의료재단의 권리의무를 승계하면서 서울동산병원도 인수했다. 1977년 동산의료재단은 해산되었으나, 1980년부터 동산성심병원으로 개명했다. 1979년 신관건물을 신축·개원한 후였다.
1968년 윤덕선은 필동성심병원(국내 최초 민간종합병원)을 개원한 후, 1970년 중앙대 부속병원이 되면서 중앙대 교수를 역임했다. 1971년 윤덕선은 한강성심병원(당산동)을 개원하면서, 한림의료원의 모태를 마련했다. 이후 의료원 확장을 위해 청량리 부지를 인수한 것이다. 1999년 평촌성심병원이 개원하면서 동산성심병원은 폐원했고, 이후에도 동상성심병원 건물은 한림대 치과병원과 의대 강의실로 활용되다가 철거(2015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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