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침 공복커피가 다이어트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커피가 혈당·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마셔야 한다. 또한 커피는 위산분비를 자극하는 성질이 있어서, 위장질환을 가진 이들은 공복섭취를 금지해야 한다. 물론 충분한 음식을 섭취 한 후에는 소량의 커피를 즐겨도 좋다. 이전 글 <위산에 패인, 위궤양>에서 카페인은 위산 분비를 평소보다 최대 80%까지 증가시키는데, 특히 공복상태에서의 위산 자극은 위염·위궤양을 유발한다고 언급했었다.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키는, 커피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면서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 분비를 촉진시켜, 투쟁-도피 반응을 유발시킨다. 스트레스 호르몬들은 간의 글리코겐 분해를 촉진하면서 혈당 스파이크를 유발한다. 특히 코르티솔 분비량이 많은 아침시간대에는 혈당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기에, 공복커피가 혈당의 증가폭을 키우게 된다.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은 생존위협·스트레스 상황에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신체를 즉각적인 행동(싸우거나 도망치기)에 최적화하는 생리적 반응으로, 생존을 위해 진화적으로 각성(혈당상승·불안증폭)시키는 본능적 메커니즘이다. 맹수로부터 도망치던 원시시대에는 투쟁-도피 반응이 유용했지만,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카페인은 오히려 고혈압·불안·소화불량·면역저하를 유발할 수도 있다. 지나친 각성효과는 집중력 향상보다 불안·초조·두근거림 같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인슐린 민감도가 낮은 사람은 각성효과보다 피로·무기력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슐린 민감도(sensitivity)는 저항성(resistance)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인슐린 민감도가 높다는 것은 적은 양의 인슐린에도 세포반응이 민감하여 혈당이 효율적으로 낮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높다는 것은 충분한 양의 인슐린에도 세포반응이 둔감하여 혈당이 잘 내려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혈당이 쉽게 낮아지지 않으면, 췌장은 인슐린 분비를 더 늘리게 된다. 결국 고혈당·고인슐린혈증이 동반되며, 장기적으로 제2형 당뇨병, 비만, 지방간,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 인슐린 민감도를 높이면 인슐린 저항성이 줄면서 당뇨병·대사질환 위험이 낮아진다.
커피의 유래와 전파, 카파·모카
커피(coffee)는 커피나무의 열매 속 씨앗을 말린 생두를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만든 가루에서 추출한 음료로, 카페인(caffeine, 커피에 있는 성분)의 각성효과로 인해 피로를 잊게 한다. 커피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있다. 아랍어 카흐와(qahwah, 식욕억제제로 사용되던 포도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데, 술 대신 커피가 식욕억제제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카흐와는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가면서 카훼(kahve), 이어 네덜란드로 넘어가 코피(koffie)를 거쳐 지금의 커피가 되었다.
커피의 원산지는 북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서부 카파(Kaffa)로 추정되는데,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Kaldi)의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날 칼디는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흥분·불면 증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직접 먹어본 후 근처 수도원에 알리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졸음을 쫓는 효능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커피열매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신비의 열매로 여겨지게 된다. 15세기 에티오피아 건너편 아랍(Arab)지역으로 전파되었고, 예멘 수프이(Sufi) 수도원에서는 커피를 마시면서 기도·명상에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16세기 아랍상인들을 통해 커피의 인기가 더욱 확산되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콩을 수입하여 예멘의 모카(Mocha) 항구를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졌다. 커피는 무역을 통해 아랍지역 전체와 오스만제국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커피전문점 카페(Café)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 유럽커피
16~17세기경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기 전까지는,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생소한 음료였다. 과거 십자군전쟁으로 인한 반감과 함께 이슬람국가와의 종교·문화적 차이로 인해 커피는 악마의 음료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7세기 이슬람세계와의 교역을 통해 유럽상인들은 커피를 취급하게 되었고, 유럽 전역에서 커피하우스(coffee house)가 오픈하기 시작했다. 커피열매를 물에 끓여 우려 마시는 방식은 터키와 교역하던 베네치아에서 자리잡게 되었고, 이후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로 전파되었다. 그 전까지는 커피열매를 통째로 씹어 먹었다고 한다.
서유럽·동유럽 모두 무역회사를 통해 커피를 수입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천주교 사제들은 이단의 음료인 커피를 금지시켜 달라는 탄원을 교황(클레멘스 8세)에게 올렸지만, 교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커피는 귀족·상인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플로리안(Floria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1720년 베네치아에서 오픈했다.

1645년 유럽 최초로 베네치아에서 커피하우스가 오픈한 이후, 커피하우스가 유럽 전역에 생기면서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 글 <카페를 즐겨찾는,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페는 도시생활과 밀접한 장소가 되었으며, 커피를 즐기는 것이 도시의 일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커피하우스는 당대의 지식인·정치인·작가 등이 모여 의견·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장소로 활용되었고, 이러한 커피하우스 문화는 계몽주의 시대와 밀접한 연관되었다. 1890년 전후 조선에도 커피(가비·가배)가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처음 접하고 즐겼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인스턴트 수입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19세기 후반 조선에서는 커피는 가비(咖啡)·가배(珈琲)로 불렀는데, 이는 커피를 음차한 것이다. 1876년 개항 이후 서양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커피는 상류층의 기호식품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이전 글 <천주교가 보내 온 택배, 커피>에서는 철종대 조선 천주교는 나름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면서 프랑스 신부들이 본국이 식생활을 그리워했고, 1861년 조선에 커피가 최초로 들어 왔다고 언급했었다. 유럽에서도 평민층이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시점은 1860년대라고 하니, 한국의 커피문화는 서양에 비해 그리 늦은 편도 아니었다. 조선에서 식후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의 식후 음료문화(차·숭늉)가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전부터 식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 한국인의 모습도 수백년 동안 이어온 식후 음료문화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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