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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도시] 100년 넘게 세 줬던, 홍콩

by Spacewizard 202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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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말 타이포구(홍콩) 웡푹법원 아파트단지(Wang Fuk Cour apartment complex, 1983년 준공)가 리모델링 공사 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해당 아파트(총 8개동, 2,000세대 규모) 7개동이 불타면서 대규모 인명피해(44명 사망, 279명 실종)가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와 안전망이 불타는 모습을 주로 비췄는데, 화염의 강도가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강렬했다. 오후 2시대 발생한 불은 다음 날 새벽이 지나도록 완전진압이 어려웠으며, 이는 고층 주거환경의 구조적·제도적 취약점을 드러낸 사고로 남게 되었다. 초고층 주거시설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전한게 좋다지만, 문제는 돈

 

화재 확산의 주된 원인으로는 가연성 자재(대나무비계, 폼패널 등)와 화재경보 미작동이 지적되었다. 비계(飛階, 날아다니는 계단)건축현장에서 고층작업(시공·보수·도장 등)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가설구조물로, 작업자·자재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금속파이프를 조립한 강관비계(시스템비계·아시바)를 사용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통나무(침엽수)를 철선으로 엮은 나무비계를 사용했었다. 대나무비계는 중국 남부(홍콩 포함)에서 주로 사용했는데, 중량이 가볍고 설치가 쉬워서 아직까지 관행적으로 사용 중이다. 대나무비계와 그 위를 덮는 방진망은 낮은 내열성으로 불이 쉽게 붙으며, 높은 인화성으로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홍콩은 고밀도 도시구조로 좁은 골목들이 도처에 위치하는데, 이번 화재현장에도 소방차·사다리차의 접근이 어려워 초동대처가 어려웠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 내에는 소방차 주차구역이 노란색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위기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오래 전 준공된 구축단지에서 방재시스템(화재경보기, 대피유도등, 스프링클러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의문이다.

 

현재 한국(특히 서울)도 높은 건설원가를 감당할 수 없어서, 신규 아파트 공급(시행·정비 포함)이 거의 중단된 상황이다. 신축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구축은 점차 노후화되어 갈 것이며, 구축 환경개선의 주된 방법으로 리모델링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리모델링 공사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부분은 비용절감으로, 수백~수천명의 소유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공정에서 안전관리는 필수적이지만, 실제 안전은 돈(비용 증가)이다. 안전관리 강화는 공기의 연장과 공사비의 증가를 동반하게 된다. 안전비용 절감은 오히려 사업위험을 키우게 되고, 결과적으로 주거수요 감소, 아파트 가격 하락, 보험료·관리비 증가 등을 가져 온다.

 

홍콩 건설업계도 한국와 마찬가지로 다층적 하도급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부패(부실공사·감독미비)가 만연하다. 부패구조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기관·관료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화(공산화) 사회에서 나약한 개인이 국가에게 문제의 시정을 요청하기도 어렵다.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한 이후, 중국정부는 국가에 대한 비판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다. 특히 2019년 대규모 반중시위 이후, 홍콩 국가보안법·국가안보조례가 대중적 반대를 원천봉쇄했다. 

 

100년 넘게 세 줬던, 홍콩

 

과거 홍콩은 주장강 유역의 작은 섬이었는데, 19세기 들어 서구열강의 중국진출의 교두보가 되면서 급격히 변화했다. 19세기 청나라는 서구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 나약했다. 1839년 시작된 제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은 홍콩섬을 점령(1941년)하게 되고, 1942년 청나라는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섬을 영구 양도했다. 1843년 영국은 빅토리아 시티를 건설한 후, 홍콩총독부를 설치한다. 1856년 제2차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1860년 청나라는 베이징조약에 따라 구룡반도(홍콩섬 맞은 편)를 추가로 영국에 양도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면서, 홍콩섬도 영국에 넘어 갔다.

 

1898년 영국은 홍콩경계확정특별조항에 따라 신계지구도 확보하면서, 99년(1898~1997년) 동안 홍콩 전역(구룡반도·홍콩섬·신계)을 통합적으로 조차했다. 이전 글 <매립의 역사, 마산>에서 조차는 외국이 다른 나라의 영토 일부를 일정기간 빌려(임대) 통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조차기간이 끝나면 반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다. 1972년 영중정식수교 이후, 홍콩문제(조차·반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일부 지배권한을 원했지만, 중국은 홍콩의 모든 것을 반환해주길 요구했다. 결국 1984년 채택된 영중공동선언에 따라, 영국은 특정시점(1997년 7월 1일)에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것을 합의했다.

 

혼돈을 세련되게 표현한, 중경삼림

 

1997년 영국의 반환으로 홍콩특별행정구가 출범했고, 홍콩인들은 영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콩의 중국반환을 앞둔 1994년, 왕가위는 홍콩의 정체성(불안·기대)을 담은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을 제작했다. 침사추이(구룡반도)에 위치한 중경(重慶, 청킹)과 홍콩섬에 위치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합친 제목이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금융·행정의 중심지가 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젊은 감각의 공간이 되었다. 반면 청킹은 저렴한 숙박시설과 작은 상점들이 생겨나면서 외지인의 유출입이 잦아졌고, 홍콩에서 가장 조밀하고 혼잡한 지역이 되었다.

 

1961년 완공된 청킹맨션(17층 주상복합)은 초기 고급맨션이었으나, 1970년대 빈민과 이민자(인도·파키스탄계)의 유입으로 게토화되었다. 게토(ghetto)소수 인종·민족·종교 집단이 도시 내의 한정된 구역에 격리되어 사는 빈민가를 의미하는데, 1516년 베네치아에 설치된 유대인 강제 거주지에서 유래되었다. 유대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성벽을 둘러서 자치를 부여했지만, 사실상 격리였다. 현대에 와서는 홀로코스트(나치)나 흑인슬럼(미국)처럼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 특징이다.

남녀 4명이 그린 2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이별의 아픔이 치유되고,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고등학생 시절이라 감독이 전달하려는 내용보다는 감각적인 연출과 왕정문의 매력적인 모습이 깊은 인상에 남았다. 또한 도입부에 중독성이 있었던 마마스앤파파스(mama and papas)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 학창시절로부터의 해당을 고대하면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침사추이을 대표하는 슬렴구역으로는 청킹맨션 외에 구룡채성이 있었다. 구룡채성(九龍寨城, 구룡성채)는 19세기 청나라 요새로 시작하여, 아편전쟁 이후 치외법권화되면서 무정부 상태의 공간이었다. 1940~80년대 인구유입(중국내전·혁명피난민·삼합회) 급증으로 슬럼화되면서, 마약·도박·매춘 소굴로 전락했다. 구룡채성는 1993년 철거되었는데, 구룡성채 건물들 사이로 카이탁 공항(1924년 건설된 홍콩 최초의 공항)에 착륙하려는 항공기 사진은 1990년대 홍콩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세곡사거리에서 바라 본 성남공항에 착륙하려는 군항공기를 보는 느낌. 1998년 카이탁 공항도 폐쇄되었는데, 이착륙 환경(산·바다·고층빌딩)이 악명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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