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산업은 흔히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느껴지지만, 현 시점에스는 자원 집약적 산업임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자원은 자본·전력이며, 이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공급능력이 제약 받을 가능성이 높다. AI칩의 공급이 충분하더라도, 수요처의 자금조달 능력과 전기 인프라가 의심을 받는 국면이다. 발전능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전(유통)의 제약을 줄이는 것도 향후 전력산업의 과제이다. 아무리 많은 전기를 생산하더라도, 송전(current, 유통) 인프라가 받쳐줘야만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생산보다 유통, 송전
전기는 소비되는 지역과 생산되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동해안에 신설되는 원자력·화력발전소 외에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도 급증하는 것도 문제인데, 원격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망 건설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더 이상 자연환경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다 곳곳에 풍력발전설비가 세워져 있으며, 전기차와 그 충전시설이 일상화되어 있다. 실제 제주도를 비롯하여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호남지역에서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력제어는 송전망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전력이 과도하게 발전됐을 경우 발전량을 조절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발전·송전의 미스매칭을 통제하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송전제약에 따른 전력과잉공급도 블랙아웃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가의 핵심인프라인 대용량 전력망(345kV급 이상)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갈등관리시스템이 부재하여 이해관계 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호남지역과 연결되는 송전선로는 2개에 불과한데, 345kV(신옥천~세종)과 345kV(청양~신탕정)이다.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는 이유로는 전력망 구축 주체가 한전(한국전력)에 한정되어 있으며,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지역사회·주민에 반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14년 밀양사태를 계기로 송전설비주변법이 제정되었지만, 지역망 보상 제외, 보상단가 정체 등으로 주민 수용성 확보가 어렵다. 무엇보다 누적부채가 205조원대(2024년말 기준)에 달하는 한전이 재정지원 없이 계속적으로 재원조달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늦여름 정전사건, 2011년
2011년 9월 15일 오후 전력예비력이 4,000㎿ 이하로 떨어지자, 전력당국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한 전국지역별로 순환단전을 실시하면서 정전이 발생했다. 전력산업은 초 단위로 수급을 맞춰야 하는 서비스로, 한국은 60㎐(헤르츠, 1초당 진동수 60번)라는 균일한 주파수(품질)의 전기를 쉼 없이 공급하고 있다. 초과공급(59㎐ 이하)이나 초과수요(61㎐ 이상) 모두 정전을 일으킬 수 있다. 9·15 순환정전사건은 전력당국이 때늦은 무더위로 인한 전력수요의 급증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는데, 이후 건물관리를 하면서 여름철 마다 에너지 절감방안을 고민했던 생각이 난다.
2011년 정전사건을 계기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4~2028년)에서는 다수의 신규 발전사업을 허가했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신규 발전소(삼척블루파워·강릉에코파워, 신한울원전 1·2호기 등)의 발전용량이 7GW에 달하며, 기존 발전소(GS동해전력·삼척그린파워, 한울원전 1∼6호기)와 향후 추가될 신한울원전 3·4호기까지 합하면 17GW를 초과하는 용량이 될 것이다.
이전 글 <수급예측을 어렵게 하는, 신재생>에서는 2002년 이후 전력수급기본계획을 2년 마다 갱신하며, 현재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인 수립된 상태라고 언급했었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8~2032년)에서는 늘어나는 발전설비를 뒷받침하기 위해, 송변전설비의 적기확충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년)에서는 동서를 잇는 동해안 HVDC 준공시기가 4년 가량 지연된 2026년으로 계획되었고, 남북을 잇는 서해안 HVDC 건설을 2036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효율적 장거리 송전, HVDC
단거리·중거리 송전(300km 이내)에서는 교류(AC)가 표준이며, 장거리(300km 이상)에서는 HVDC가 보완적으로 사용된다. AC가 송전에서 효율적인 이유는 대부분 발전기가 AC 기반이며, 변압기가 간단하고 전압을 효율적으로 승·강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전과 가정용 부하(모터·가전)도 AC 기반이다. 승압(전압 높이기)은 전류를 줄여서 저항손실을 최소화하며, 전선직경을 줄일 수 있다. 송전전력은 전압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초고압직류송전)은 발전소에서 생산된 교류(AC)를 직류(DC)로 변환해 장거리 송전한 후, 수요지에서 다시 AC로 바꿔 공급하는 기술이다. 정류기(rectifier)는 AC를 DC로 변환하는 장치이며, 역변류기(inverter)는 교류로 재변환하는 장치이다. 장거리 전송은 고압의 직류선로(2가닥 도체)를 통해 이뤄진다. HVDC는 송전탑이 작으며, 1가닥도 가능하여 지중화·해저케이블에 적합하다. 장거리(300km 이상)나 해저송전에 있어서는, HVDC의 전력손실이 AC 대비 30~40% 가량 감소한다. 또한 HVDC는 주파수 동기화가 불필요하며, VSC 전압형 컨버터를 통해 재생에너지 연계도 우수하다. 다만 변환기(LCC·VSC) 비용 높아서, 초기 투자금은 큰 편이다.
서해안 HVDC는 호남의 발전력을 해저를 통해 공급하는 사업인데, 아무래도 육상보다는 해저가 갈등발생의 소지가 적다. 송전시장을 민간에 개방할 수는 없지만, HVDC의 건설속도를 높이기 위해 민간건설사의 역할도 기존(설계·시공)보다 확대할 예정이다. 건설 이후 민간이 운영권을 가지는 사회간접자본(SOC)과는, HVDC는 한전이 운영하게 된다.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상] 간간히 뚫어야 하는, 막힘 (0) | 2025.11.26 |
|---|---|
| [정책] 옥쇄가 낳은, 노란봉투 (0) | 2025.11.18 |
| [AI] 체급이 급격히 커진, 빅테크 (1) | 2025.11.17 |
| [일본] 해외로 넘어가는, 일본가전 (0) | 2025.11.15 |
| [AI] 끊임없는 투자, 하이퍼스케일러 (1) | 2025.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