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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도시] 군부대 야산, 위례

by Spacewizard 202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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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계획된 위례신도시는 10만 인구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위례는 <여르(크고 많다)>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위례성은 <인구가 많은 큰 고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위리(圍籬, 울타리)에서 파생되었다는 설도 있으니, 어쨎든 대읍(수도)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BC 18년 온조(백제 시조)는 십제(十濟, 위례)의 도읍지로 하북위례성을 쌓았고, 이후 한강을 건너 하남위례성으로 이전했다. 이 때 국호를 개명(백제)하고 정복활동을 펼쳤다. 하북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모른다. <삼국사기>에서는 하남위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북쪽으로는 한수(한강)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검단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땅(강남,탄천 일원)이 바라 보이며,
서쪽은 대해(서해)가 가로 막혀 있다

 

하남위례성은 풍남토성·몽촌토성·이성산성 중 하나로 추정한다. 371년(백제 근초고왕 26)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인 후, 그 해 겨울 한산(漢山)으로 천도했다. 이 때의 천도경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하남위례성(풍납토성 일대) → 한산(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일대)
하북위례성 → 하남위례성(풍납토성, 몽촌토성 일대)

 

여러모로 몽촌토성 일대가 한산(한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75년(문주왕) 백제는 수도를 웅진성(공주)으로 천도했고, 그 전까지는 한산이 수도였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숭렬전(사당)이 있는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결사항전하다가, 삼전도에서 항복의례를 했다고 한다. 청군의 주둔지는 탄천·삼전도 일대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남한산성 아래 탄천 일대에 청군 20만명이 주둔지를 구축했는데, 오늘날 서울(문정동·장지동·가락동)과 성남(수정동) 일대일 것이다. 위례신도시의 서남부 경계까지 청군이 주둔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한강에서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삼전도 근처에도 주둔했는데, 인조는 심전도 주둔지 내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헸을 것이다. 삼전도(三田渡, 삼전나루)는 조선시대 한강의 주요 나루터 중 하나로, 잠실섬을 북쪽으로 바라보는 해안에 있었다. 오늘날 석촌호수 일대이다.

 

1970년대부터 서울의 도심 확장과 군사기지 재배치 계획에 따라 대규모 부대들이 남한산성 아래로 이전했다. 1968년 육군종합행정학교가 삼각지(용산구)에서 창설되었고, 창설 1달 만에 창곡동(성남) 일대로 이동했다. 1969년 11월 11일, 육군종합행정학교 준공식이 열렸을 당시, 박정희는 남성대(南城臺)라는 명칭을 명명해 하사했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첫글자와 끝글자를 딴 것이다. 1972년 부평(인천)에 있던 특전사령부와 제3공수특전여단가 거여·마천 일대로 이전했는데,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1981년 남성대 인근에 골프장(18홀)을 조성했고, 1984년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육군교도소 부지를 흡수하면서 창설되었다. 1962년 창곡동으로 이전한 육군교도소는 1985년 장호원읍(이천)으로 이전했다. 2011년 육군종합행정학교(충북 영동)와 학생중앙군사학교(충북 괴산)가 이전했고, 2016년 특전사령부가 이천(경기)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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