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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도시] 피리 부는 마을, 상적동

by Spacewizard 2026.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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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 안쪽으로 청계산입구역(신분당선)을 지나 청계산로를 주행하다보면, 대왕저수지와 신구대학교식물원이 나온다. 그 전에 오른쪽으로 갈리는 길이 있는데, 이는 옛골로 이어진다. 1999년 여름 군복무 중인 친구를 면회하기 위해, 양재역에서 버스를 타고 옛골 인근의 군부대로 간 기억이 있다. 이렇게 옛골(서쪽)과 대왕저수지(동쪽)를 아우르는 행정구역이 상적동이다. 상적동(성남)은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개발제한구역·군사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상적동 일대는 조선시대에도 용인으로 이어지는 삼남대로가 지나고 있었는데, 그 대로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지역을 구분했다.

 

대로 위 : 윗골(옛골·노상리)

대로 아래 : 아랫골(노하리)

 

피리 부는 마을, 상적동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윗골·아랫골·적푸리를 통합하여 상적리가 되었는데, 행정명은 노상리·적푸리에서 따왔다. 과거 청계산 동쪽자락의 계곡 아래에는 <적푸리(적촌·적무리·적취리)>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원래는 호걸들이 적(笛, 피리)를 불며 유람했던 공간이라 <적무리>로 불렸다는 설도 있고, 집성촌을 이뤘던 덕수이씨 가문에서 등과(과거급제)가 잦아서 피리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피난 중이던 명성황후가 적푸리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명성황후는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적푸리·광주·충주·음성·여주·이천 등지로 이동하여 약 51일간 은신생활을 했었다. 

 

덕수이씨(德水李氏)는 덕수리(경기도 개풍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시대 신호위 중랑장(中郎將, 현 대대장급)을 지낸 이돈수이다. 개풍군은 본래 개성에 인접한 군으로, 1930년 개성군에서 분리·신설되었다. 신호위(神虎衛)는 고려시대에 왕의 호위 및 수도 방어를 담당한 2군 6위 중 하나로, 7,000명 가량의 병력을 보유한 중앙군이었다. 이양준(이돈수 아들)도 고위관직(동지추밀원사·이부상서 등)을 지냈는데, 조선시대 후손 중에 유명한 인물로는 이이·이순신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여러 분파로 나뉘면서, 조선의 명문가문으로의 명맥을 유지했다. 

 

옛골에 들어선 사찰, 정토사

 

량(場, 장)은 공간·장소을 말하며, 불교에서 도량(道場, 깨우치는 공간)은 다음의 의미를 가진다.


물리적 공간 : 승려들이 깨달음을 얻은 공간(사찰·법당)
내면적 공간 : 마음 속에 부처를 모시고 수행하는 공간

 

흔히들 <마음의 도량>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는 수행자의 깨끗한 내면세계 자체가 도량이라는 의미이다. 1982년 스님들이 옛골 도량(100평 가량의 주택)을 인수하여 정토선원(淨土禪院)을 창립했는데, 이후 옛골 낚시터(저수지) 일부 부지를 추가 매입하면서 정토사(淨土寺)가 되었다. 사찰명처럼 정토사상의 실천과 염불 수행의 중심지이다. 이전 글 <중국에서 현지화된, 불교>에서 8개의 중국화된 불교 종파를 소개하면서, 정토종은 오직 아미타부처에 대한 염불(나미아미타불·아미타불 등)을 강조한 대승불교 종파라고 언급했었다. 수행을 강조한 종파로는 정토종 외에 선종·율종·밀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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