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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 강함 속의 단합, 위구르

by Spacewizard 2026.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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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위구르인들이 중국 한족에 저항한 역사는 짧지 않으며, 특히 2010년대 들어 시진핑 집권기에 신장위구르에 대한 탄압의 강도가 더 세지고 있다. 이는 2014년 4월 시진핑이 우루무치를 방문했을 당시 발생한 기차역 폭탄테러가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중국정부는 대규모 강제집단수용소를 운영하며 제노사이드 수준의 인권탄압(감금·고문·강제혼인·윤간·강제불임·장기적출·언어말살·이슬람배척 등)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주장이 많다.

 

또한 집단수용소에 감금된 위구르인들은 공산당 세뇌교육을 받으며, 그 집단수용소 인근에 위치한 직물공장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방에서는 이에 대한 제재를 통해 신장산 면화사용 규제에 들어갔다. 2021년 12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을 시행했으며, 2024년 초 유럽연합(EU)도 <강제노동 결부상품 수입금지 규칙>을 입법했다. 

 

말그대로 강한 민족, 투르크

 

투르크(Türk)는 튀르크어족 언어들을 모어로 사용하는 민족집단을 말하며, 고대 튀르크어 튀뤼크(Türük, 강한)에서 유래했다. 투르크는 돌궐(突厥,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에서 시작되었는데, 돌궐은 투르크를 음역한 한자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투르크계 국가는 다음과 같다.

 

튀르키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

러시아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러시아 다게스탄 공화국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한족(90% 이상)과 그 외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5개 민족의 거주지역은 자치구(自治區)로 형성되어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영토의 6분의 1(한반도 8배 가량)를 차지하는 최대 행정구역이다.

 

광서 장족 자치구(廣西壯族, 좡족)
영하 회족 자치구(寧夏回族, 후이족)
서장 자치구(西藏, 티베트족)
신강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위구르족)
내몽고 자치구(內蒙古自治區, 몽골족)

중국 5개 자치구 [지도:위키피디아]

신장위구르가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받는 이유는 8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중국 내 석유·천연가스 매장량의 30% 이상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투르크계 중 하나인 위구르는 단결(연합)을 의미하는 위구르어에서 유래했다. 1755년 청나라 건륭제가 위구르족 정착지를 정복한 후, 새로 붙힌 명칭이 신강(新疆, 새로운 강역, 신장)이다.

 

당나라를 압도했던, 위구르제국

 

6~7세기 동돌궐 지배 하에서 위구르족은 바이칼호 남부의 설연하(偰輦河, 세렝가강) 유역에서 거주하였는데, 세렝가강은 몽골에서 러시아의 바이칼호로 흘러가는 강이다. 744년 쿠틀록 빌게 퀼 카간이 동돌권을 멸망시키면서 오늘날의 몽골 위치에 위구르제국을 세웠다. 카간(하늘의 지명을 받은 자)은 투르크계 내지 몽골의 군주를 의미하며, 튀르크에서 카간·카안으로 불리던 명칭이 몽골에서 칸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위구르제국는 남방에 위치한 당나라의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한 군사력(기마)을 보유하고 있었다. 757년 당나라에서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위구르군은 장안(당나라 수도)으로 진군·진압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장안은 위구르군에 의해 유린·파괴되었으며, 황손을 포함한 수많은 당나라인을 노예로 끌고 왔다고 한다. 위구르제국은 당나라로부터 확보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유목제국 역사상 최초의 도시 오르두 발릭(Ordu Balïq)을 건설하여 수도로 정했는데, 현재의 카라 발가순(Qara Balɣasun)이다. 오르두 발릭은 내륙무역의 중심지로서 크게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8세기경 중국 내부의 혼란을 피해 마니교 사제들이 오르두 발릭으로 들어오면서, 마니교는 위구르의 국교로 채택되었다.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는 마니(Mani, 페르시아 예언자)가 3세기에 창시한 이원적 종교로, 마니는 스스로를 빛의 사도를 칭했다. 조로아스터교가 마니교에서 파생된 종교이다. 이원론은 세상은 선(영)과 악(물질)이 구분·대립하는 가운데, 물질로 구성된 인체는 엄격한 규칙생활·고행·금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교리이다. 마니는 스스로를 아브라함-석가모니-예수-조로아스터를 이은 마지막 예언자라고 주장했다. 7세기 중국황실에 마니교 선교단이 들어가 포교활동을 허가 받았으나, 9세기 마교(魔敎)로 몰리면서 종교활동이 금지되었다.

 

조금 더 서쪽으로 자리잡은, 위구르족

 

9세기 들어 위구르제국은 칸 계승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832년에는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한다. 엄청난 부가 몰린 오르두 발릭은 많은 유목민족의 타겟이 되었고, 결국 840년 키르기스(Kyrgyz)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위구르인들은 몽골초원의 남·서로 이주하면서, 다음 2그룹으로 나뉘었다.

 

하서위구르(남쪽) : 하서회랑에 정착한 그룹

천산위구르(서쪽) : 천산산맥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진 그룹

 

하서회랑(河西回廊)은 말 그대로 황하강 서북쪽으로 길게 난 평평한 복도 같은 길로, 서안(한나라 수도)에서 서역을 한번에 연결하는 몽골고원·티베트고원 사이의 좁고 긴 지역이었다. 복도·회랑은 지붕·천정이 있는 기다란 통로라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복도는 양쪽에 벽·창문이 있는 반면에, 회랑은 한쪽에만 벽·창문이 있다. 아래에는 만년설로 덥힌 기련산맥이 있고 위로는 고비사막이 있는 지형을 회랑이라고 표현하다니, 예술적인 작명이 아닐수 없다. 아무튼 하서회랑이 통과하는 중국 간쑤성(감숙성)은 중국·북방흉노 모두에게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이전 글 <동학사상을 아이다움으로 실천한, 방정환>에서 중국인들이 서역(현 중앙아시아·아랍)사람을 호인이라 불렀다고 언급했었다.

 

10세기 초반 생겨난 하서위구르는 인근 중국군벌과 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나, 1026년 탕구트족(티베트계)의 공격으로 완전히 토벌되었다. 10세기 중앙아시아에는 투르크계 카라한왕조가 있었는데, 934년 카라한왕조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는 이슬람화되었다. 이 때 이슬람화된 천산위구르는 중앙아시아에 높은 수준의 문화를 전수했으며, 투르크어를 확산시켜 나갔다. 이슬람을 종교로 하는 위구르족은 회회(回回)·회흘(回紇)·회골(回鶻)이라고 불렸는데, 이슬람을 회교(回敎)로 부르는 것도 위구르족에서 유래한 것이다.

 

칭기스 칸의 등장 이후 천산위구르는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지만, 몽골족 다음 가는 지배계급(색목인)으로 우대를 받았다. 이는 몽골제국이 자리잡은 그 자리에서 과거 위구르제국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민족이라는 커리어가 반영된 것이다. 훗날 몽골제국이 여러 칸국으로 쪼개지면서는 천산위구르는 차가타이 칸국의 지배 하에 놓였다가, 차가타이 칸국에서 분리된 모굴리스탄 칸국의 지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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