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반부(潘阜)가 남송에서 귀화하면서, 반(潘)씨의 시조가 되었다. 남송 문과에 장원급제했던 반부는 요직(한림학사·이부상서 등)을 역임했지만, 간신의 모함으로 원나라 사신으로 보내져 죽을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쿠빌라이 칸은 반부의 재능을 높이 샀으며, 제국대장공주(충렬왕 비)를 보필하기 위해 고려로 보냈다. 반부는 고려 조정에서 정당문학(정3품)을 지냈으며, 원나라·고려 연합군의 일본 원정에 참여한 공으로 문하시중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봉해지면서 기성(현 거제)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문하시중(門下侍中)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최고 정무기관)의 책임자로, 국가실무를 총괄하는 종1품 수상(首相)이었다. 문하시중보다 높은 품계는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웠다. 정1품(삼사·삼공)은 국가원로였고, 종1품(중서령·상서령)은 왕족·공신에게 사후에 내리는 추증직(내지 치사직)이었다. 문하시중은 판이부사(判吏部事)도 겸직했는데, 이부(吏部)는 문관인사를 관장하는 부서였다. 고려 초기 이천서씨 가문이 3대(서필·서희·서눌)에 걸쳐 최고재상직(내의령·내사령·문하시중)에 올랐는데, 특히 서희·서눌은 거란과의 전쟁 국면에서 국정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
고려 후기 원간섭기에는 관제격하와 함께 문하시중 명칭도 정승(政丞)으로 낮춰 불리기도 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으로 문하시중 명칭으로 복원되었는데, 이 때 복수체제로 변모했다.
문하시중 : 좌시중
수문하시중 : 우시중
조선 건국 직후에도 문하시중 직책은 잠시 유지되다가, 태종대 들어 의정부(議政府) 체제로 개편되었다. 조선은 고려직책(좌시중·우시중)을 계승하여, 좌의정·우의정을 두었다.
거제는 삼한시대 독로국(변한 12개국)의 영토로, 독로(瀆盧)는 도루·두루(섬·도랑·돌다 어원)을 음차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문무왕대 상군(裳郡)이라 불렸는데, 비가 올 때 허리에 두르던 도롱이(두룽이)에 유래한 상(裳, 치마)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 757년(경덕왕 16) 전국 지명을 한자식 2음절로 개정하는 행정개혁 과정에서, 상군은 거제군으로 개칭되었다. 거제(巨濟, 크게 건너다)는 일본을 왕래하는 길목이면서 사람을 크게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려 성종대 기성현으로 개명되었다. 기성(岐城, 갈림길의 성)은 <가지 친 지역의 변방>을 의미하는데, 실제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로 섬 전체를 비웠다. 1422년(세종 4) 주민을 다시 섬으로 복귀시켜 배 모양의 성을 쌓은 후, 거제현 관아를 위치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왜군에게 함락된 후, 전후복구가 쉽지 않았다. 1664년(현종 5) 조정은 거제현 관아를 거제면(계룡산 남쪽)으로 이전시킨 후, 원래 관아가 있던 공간은 고현(古縣, 오래전 현)이라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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