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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 대를 이은 복수, 항우

by Spacewizard 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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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영정(진시황)이 6개국을 멸망시키면서, 혼란의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켰다. 진나라의 전략은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먼 나라는 외교관계를 유지한 채 가까운 나라부터 공격하면서 동북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진나라는 불과 10년 만에 다음 6개국을 차례로 점령했는데, 그 공격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한(韓, 기원전 230년) : 수도 신정
조(趙, 기원전 228년) : 한단
위(魏, 기원전 225년) : 대량
초(楚, 기원전 223년) : 영
연(燕, 기원전 222년) : 계성
제(齊, 기원전 221년) : 임치

 

한나라(진나라 동쪽)는 중원(현 허난성 일대)에 위치했는데, 사방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당시 한나라는 강한 군대는 없었지만,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가 있었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저서를 접한 후, 다음과 같이 감탄했다고 한다.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한나라는 한비자를 진나라 외교사절로 파견했는데, 한비자에게 열등감을 느낀 이사(진나라 승상)는 이간질로 한비자를 자결하게 만든다. 과거 이사·한비자는 순자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지만,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지자 동문을 제거한 것이다. 또한 오래 전부터 뇌물공세를 통해 한나라 내부의 친진파를 배치했고, 이들을 통해 여론전을 펼쳤다. 한나라는 정국(토목기술자)를 스파이로 보내, 대규모 운하공사를 통해 진나라 국력을 소모시키고자 했다. 정국이 스파이로 들통나면서, 진나라 조정에서는 객경(외국 출신 관료)를 내쫒자는 축객령(逐客令)이 떨어지면서 혼란(분열)이 일었지만, 이사가 올린 축객서(逐客書)가 진시황을 설득하면서 분열을 막았다. 이후 진시황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외국인재를 더 강하게 포용했다. 

 

조나라에는 이목(李牧)이라는 명장이 있었으나, 뇌물을 좋아하는 곽개(조나라 승상)을 포섭하여 이목을 반역죄로 처형했다. 곽개는 그 전에도 염파를 모함한 전적이 있는 간신이었다. 이목이 반간계(反間計, 이간책)로 처형된 후 방어선은 무너졌고, 왕전(王翦)이 수도를 함락했다. 이후 대나라(조나라 망명정부)도 오래 못가 멸망했다. 위나라는 왕분(王賁, 왕전 아들)의 수공(水攻)에 의해 무너졌는데, 황하의 물을 끌어와서 도성을 침수시켰다. 초나라는 진나라에 가장 강력히 저항한 남방대국이었는데, 초기 대패 이후 총지휘를 다시 맡은 왕전이 항연(초나라 대장군, 항우 조부)을 대패시켰다.

 

연나라는 진시황 암살기도로 유명한데, 기원전 227년 단(丹, 태자)이 자객 형가(荊軻)를 보내 궁궐 내에서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분노한 진시황은 대대적인 보복공격을 감행했고, 수도를 버리고 요동으로 도망친 연나라 왕을 붙잡았다. 동쪽 끝에 위치한 제나라는 외교정책을 고수했는데, 주변 5개국이 멸망하면서 자연스레 진나라의 공습을 받게 되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나보다.  

 

항우는 초나라와 할아버지(항연)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을 것인데, 이러한 복수심을 원동력 삼아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항연이 전사한 후, 항씨 가문은 여기저리 흩어졌다. 숙부(항량) 손에서 자란 항우는 만인적(萬人敵) 병법을 깨우치며서 진시황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병법을 구분했는데, 항우의 병법은 병형세에 가까웠다. 

 

병권모(兵權謀) : 치밀한 계산·전략 중시

병형세(兵形勢) : 군대의 압도적인 기세·돌파력 중시

 

기원전 209년 진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에, 항량·항우는 <대장군 항연>의 이름을 내걸면서 회계에서 초나라 군사를 일으켰다. 기원전 207년 항우는 진나라 군사(30~40만명)와 거록에서 맞붙었는데, 파부침주(破釜沉舟,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힘)의 결단으로 배수의 진을 쳤다. 거록대전에서 승리한 항우는 왕리(왕전 손자)를 잡으면서 대를 이은 복수를 했다. 항우는 거록대전에서 항복한 진나라 군사(20만명)을 밤중에 경갱(생매장)하는데, 반란의 우려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함양(진나라 수도)에 입성한 항우는 이미 유방에게 항복한 자영(진나라 마지막 왕)을 살해한 후, 아방궁(내지 함양궁)에 불을 질러 3달 동안 타오르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항우에게 매번 졌던 유방은 한신의 군대와 합세하면서, 항우를 해하성(垓下城)에 고립시켰다. 한신이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옴)으로 심리전을 구사하자, 포위된 항우의 군사들은 고향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모두 도망쳤다. 패왕별희(霸王別姬, 초패왕이 우희와 이별함) 후 홀로 도망친 항우는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우희(우미인)가 검무를 추던 중 항우의 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이후였다. 결국 병형세를 구사하던 항우가 병권모에 능한 한신의 치밀한 계산과 덫에 걸려 기세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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