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盤浦)는 서릿개(蟠浦, 서리서리 구비쳐 흐르는 개울)에서 유래했는데, 반(蟠, 둥글게 감을)이 반(盤, 소반·대야)으로 변했다. 이 일대는 반포천이 넘치면 대야에 물을 받은 것 마냥 침수되는 지역이었다. 마뉘굴(매곡동, 현 조달청 부근)에 살던 주민의 시각에서는 서릿개 너머 깎은 듯한 벼랑(서리개언덕) 쪽의 마을을 서애(西涯, 서쪽 물가)라 불렀다. 마뉘굴(마뉘꿀)은 말구유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서릿개 일대의 골짜기 지형이 마치 <말의 구유(먹이통)>처럼 오목하게 생겨다고 하여 붙여졌다. 매곡동(梅谷洞, 매화 골짜기)은 마뉘굴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실제 골짜기 주변에는 매화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서릿개가 서리개-서리애-서래로 변음하는 과정에서, 서애도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서래섬·서래마을·서리풀공원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972년 한강에 제방을 쌓기 전까지 서릿개 북측은 모래펄이었으며, 1982~1986년 진행된 올림픽대로 건설 및 한강종합개발로 인공섬(서래섬)이 조성되었다.
1960년대 말의 고조된 남북간 긴장상황과 사회적 불안요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중산층이 선호하는 주택형식이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무리하게 추진하던 주택공급정책은 와우아파트 붕괴(1970년)와 광주대단지 주민소요사태(1971년)로 나았고, 이에 대형 민간건설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주택건설촉진법(1972년)과 특정지구개발촉진법(1973년) 제정으로 주택건설·토지거래에 대해 3년간 세금을 면제했다. 1970년대 중반 한강변(반포·압구정·청담·동부이촌동 등) 일대에 난개발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이 일대의 건축허가를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그리고 1976년 도시계획법을 개정하면서 <아파트지구>가 신설했는데, 오로지 대단지 아파트의 집단건설만을 목적으로 하는 용도였다. 1979년까지 아파트지구는 14개로 확대되었다.
반포·압구정·서초·청담/도곡
이촌·서빙고·이수·여의도
잠실·아시아선수촌·가락·암사/명일
원효·화곡
아파트지구의 도입은 일상생활공간 물리적 범위를 규격화(근린주구 단위)했고, 이후 대단위 주택지 모델로 고착했다. 단지중심의 공간구성은 폐쇄성을 높였고, 한강변 일대은 단지형 아파트로 획일화된다. 자족적·배타적 단지계획방식은 서민아파트와 차별화를 가져왔다. 근린주구의 폐쇄성을 극복한 케이스는 상계신시가지로, 중대형 평형 없이 구성했다. 상가 없이 아파트만 지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제는 도시개발 흐름(복합개발·재건축)에 방해가 되었고, 2003년 법개정을 통해 아파트지구 신설은 중단되었다. 이후 서울시는 14개 아파트지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거나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한강변 노후단지들의 초고층 재건축 사업이 추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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