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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 성공한 노비, 이만강

by Spacewizard 2026.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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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은 백제시대 구지현(仇知縣·九知縣)으로, 전씨(全氏)들이 살던 군사요충지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금지현(金池縣)으로 개칭되었고, 금지현은 대록군(현 천안 목천)의 관할이었다. 왕건은 이도(고려 개국공신)에게 금지현을 영지로 하사한 후, 940년(고려 태조 23)에 전의현(全義縣)으로 개칭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로운 사람들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의(義)가 붙었다고 한다. 조선 태종대 연기현과 병합하여 전기현(全岐縣)이 되었다가, 곧 다시 분리되었다. 1895년 전의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일제는 전의면(연기군)으로 변경했다. 

 

전의는 전의이씨의 본관으로, 시조는 이치(李齒, 공주 호족)이다.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기 위해 남하하던 중, 홍수로 범람한 금강을 건너지 못하는 위기에 처했다. 이 때 이치가 배를 동원하여 왕건의 군대를 도강시킴으로써, 삼한통일에 공을 세우게 된다. 왕건은 이치에게 도(棹, 노 저을)라는 이름을 하사한 후, 태사(太師) 관직과 함께 영지를 하사한 것이다. 

 

이만강은 전의현 관노였는데,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글재주와 문학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주체할 수 없는 천재성을 통해 양반으로 거듭나고 싶었으며, 그가 택한 세탁가문이 영월엄씨였다. 단종이 유배지(영월)에서 생을 마감했을 당시, 홍도(호장·향리)이 단종의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후 엄홍도의 후손은 전국으로 흩어져 생사나 계보가 불분명했다. 영조대 조정에서는 엄홍도의 충절을 기려 그 후손에게 벼슬을 내리거나 혜택을 주려 했지만, 정확한 족보도 파악이 안되었을 것이다. 전의현에서 도망친 이만강은 영월로 들어가 말단관리의 사위가 되었고, 엄홍도 가문의 허점을 파고들어 엄택주로 개명하면서 족보를 위조했다.

 

1719년 이만강은 사마시(생원시)에 합격한 후, 1725년(영조 1)에는 증광시 문과에 합격했으니 가히 천재적 지능임은 분명하다. 20년 가까이 고위관직(연일현감, 제주판관 등)을 지내면서도, 전의에 있던 친부모의 묘소에 단 한 번도 성묘를 가지 않았다. 훗날 영조는 이를 강상죄라며 격노했다고 한다. 강상죄(綱常罪)는 삼강오륜(三綱五常)의 윤리를 저버린 범죄로,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역모죄와 동급으로 취급된 최악의 범죄였다. 강상죄는 다음 3가지로 구분되었다. 

 

반역(叛逆)

살부·살모(殺父·殺母) : 자식이 부모를 죽이거나,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행위

노살주(奴殺主) : 노비가 자신의 상전을 죽이거나 고발하는 행위

 

조선시대 강상죄는 범죄자 개인 뿐만 아니라, 고을 전체를 연좌제로 처벌했다.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지 못한 공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고을의 행정등급을 강등하면서, 성벽의 일부를 허물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신분(가문)을 증명하는 녹명(錄名) 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녹명소(錄名所)에는 자신의 인적사항과 직계조상 4대(부·조·증조·외조)의 성명·관직·본관을 기록한 보단(譜單)을 제출해야 했다. 녹명을 통과한 후에 녹명패(錄名牌) 내지 서류가 발급되었고, 시험 당일 관원들이 얼굴·서류를 일일이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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