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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 조선 최고 학군지, 선산

by Spacewizard 202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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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추석 하행길은 9시간(휴게소 정차 30분 포함)이 소요되었다. 동양고속이 섭외한 관광버스였으며, 다소 어려 보이는 기사는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면서 국도를 따라 운전했다. 반포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용인·청주·보은을 거쳐 6시간 30분 만에 상주IC로 빠져 나왔고, 고속도로를 10분 가량 달려 선산휴게소(중부내륙고속도로, 구미시 옥성면)에 도착했다. 과거 선산휴게소는 수도권·영남권을 잇는 핵심 환승거점이었으나, 상주영천고속도로 개통 이후 많은 노선이 낙동강휴게소(의성군)로 변경되었다.

 

옥성(玉城, 구슬같은 산성)은 고을 뒷편을 둘러싼 복우산(伏牛山, 소가 누운)의 산세와 복우산성의 형태가 마치 구슬을 꿴 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에 속했고, 일제강점기 선산군을 거쳐 구미시에 속하게 되었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는 조선시대 경상도 북서지역(현 구미·김천·상주)을 관할하던 행정중심지로, 낙동강 중류를 낀 교통·물류의 요충지였다. 삼국시대에는 일선군(一善郡)·숭선군(崇善郡)으로 불리다가, 940년(고려 태조 23)에 선주(善州)로 개칭되었다. 1318년(충숙왕 5)에 선산지주사(善山知州事)가 되면서, 오늘날의 <선산>이 등장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사(종3품)가 파견되는 도호부가 도입되면서, 선산도호부로 승격되어 경상도 북서지역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1415년 1,000호가 넘는 군을 도호부로 승격시키면서 38개의 도호부가 있었으며, 조선 말기에는 75개까지 늘어났다. 조선시대 행정구역과 그에 따른 지방관 품계는 다음과 같다. 

 

유수부(留守府, 정2~정3품 유수) : 한성 방위 요충지(개성·강화·광주·수원 등)

부(府, 종2품 부윤) : 대형 거점마을(전주·경주·평양·함흥·의주 등) 

대도호부(大都護府, 정3품 대도호부사) : 도호부 중 대형마을(안동·창원·강릉·영변·영흥)

목(牧, 정3품 목사) : 인구·물산이 집중되는 거점마을(나주·충주·진주·제주 등)

 

지위·품계의 차이는 있었으나, 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등한 수령의 지위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고을을 다스렸다. 낮은 품계의 수령이 높은 품계의 수령에게 종속되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다. 1895년 선산도호부는 선산군이 되었고, 1978년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었다.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면서 선산읍(구미시)으로 남아 있는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학문(유학)으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

 

고려 말 길재가 낙향하여 학문을 전파한 이후, 선산은 성리학의 대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사림파의 고장이 되었다. 선산도호부는 이수삼산(二水三山, 2개의 물과 3개의 산)으로도 불렸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산세와 물줄기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명당으로 인재가 태어나는 길지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이백(당나라 시인)의 시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三山半落青天外(삼산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걸쳐 있고)
二水中分白鷺洲(이수는 백록주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네)

 

선산에서 삼산이수 기운이 몰린 곳은 장원방(壯元坊)으로, 노상리·이문리 일대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장원방에서만 15명의 과거급제자가 나왔고, 그 중 장원이 7명이었다고 한다. 김종직·하위지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학군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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