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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부동산] 험난한 고개 너머, 삼동

by Spacewizard 2026.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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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주말에 경기도 광주 방면으로 드라이브를 나가면, 갈마터널을 지나는 국도(경충대로)에서 심각한 정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는 성남이천로(광주원주고속도로 연계)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많이 분산되었다. 경충대로를 지나다 보면 삼동역이 보이는데, 한적한 역이지만 잠재적인 가치는 대단하다. 일단 경강선을 통해 이매역·성남역·판교역을 10분 내에 도달할 수 있고, 위례신사선의 연장역으로 검토 중에 있다. 삼동(三洞, 경기도 광주)은 다음 3개 자연부락이 모여서 형성된 곳이다.

 

내곡(內谷, 안가지울) : 안쪽
외곡(外谷, 바깥가지울) : 바깥쪽, 갈마터널(성남 방면) 쪽
요곡(腰谷, 욧골) : 허리처럼 잘록하게 생김

 

조선시대 광주군 경안면(慶安面)에 속한 삼리(三里)로 불렸는데, 2001년 광주시로 승격하면서 법정동이 되었다. 관할 행정동은 광남동(廣南洞)이다. 갈마치(渴馬峙, 목마른 말의 언덕) 고개는 성남(갈현동)과 광주(삼동)을 잇는 고개로, 갈마터널이 관통하는 고개이다. 1978년 갈마터널 상행선(성남 방향)이 개통된 이후, 14년이 지난 1992년 하행선(광주 방향)이 개통되면서 쌍방터널이 되었다. 조선시대 영남선비들이 과거를 위해 한양으로 갈 때 험한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말도 지칠 정도로 가팔랐다. 고개 정상 부근에서 말의 갈증을 풀어주고 다시 떠났다고 한다. 백제시대 기마병이 말과 함께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지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갈(渴)을 갈(葛, 칡)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실제 칡덩굴이 많기도 했으나, 오랜 구전을 식물이름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현재 성남시에는 갈현동(葛峴洞) 명칭이 사용 중이다.

 

조선시대 경안역(慶安驛, 현 역동)을 출발한 이들은 갈마치를 넘어가기 전에 안가지울에서 잠시 쉬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대 경안역은 중로(中路)로 확장되면서 말 35필이 상시 대기했으며, 찰방(察訪, 정6품)이 수령으로 파견했다. 조선 인조대 반란을 일으킨 이괄이 경안역 부근에서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가던 공민왕이 경안역에서 몇일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역참제도가 폐지되면서 경안역이 사라졌고, 2016년 경기광주역(경강선)이 들어섰다.

 

성남이천로는 직동터널을 지나는데, 직동(直洞)은 태봉산에서 내려오는 곧고 길게 뻗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태봉산(胎峰山, 태장산)은 남서울CC(분당) 남쪽에 위치한 꽤 멀리 있는 산으로, 조선 인조의 태(胎, 아이 밸)가 묻혔다고 전해진다. 대장동(大庄洞)도 태장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무병장수와 국운번창을 기원하며 전국명당을 골라 태반과 탯줄을 묻었다. 태봉산 기슭에는 조선 성종의 태도 묻혔는데, 그 산자락 아래의 마을과 밭은 태전(胎田, 광주 오포)이라 불렀다. 과거 곧은골(직리·직곡)로 불렸던 직동에는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재(南在, 조선 개국공신) 후손들이 대대로 모여 살던 세거지로, 임진왜란 직전 남호(南琥)이 자리 잡으면서 도사공파(의령남씨)의 중심지가 되었다. 맹사성의 묘가 직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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