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은 조선시대 장원서에서 유래되었는데, 장원서(掌苑署)는 절기에 맞춰 궁궐에서 사용할 과실·꽃·나무를 키우던 관서였다. 또 다른 설로는 원래 화기동(火器洞)이었던 것이 화개동으로 음이 변했다는 유래가 있는데, 당시 총포를 만드는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위치했었다고 한다. 오래된 도시 내의 드넓은 부지에는 역사적 사건의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인데, 현재의 정독도서관 부지가 저토록 넓게 확보된 계기는 갑신정변이었다.

갑신정변 가담한 역적의 재산은 국가에 몰수되었고, 집은 헐렸다. 김옥균·서재필은 정독도서관 부지에 살았는데, 현재 서울교육박물관(1927년 신축 추정) 부지가 김옥균의 집터로 추정된다. 1872년 22세의 김옥균은 문과(알성시)에 장원급제하여, 그 해 성균관에서 도서출납을 담당하는 전적(典籍, 사서)에 임명되었다. 1894년 김옥균은 프랑스에서 만난 홍종우(온건개화파,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에 의해 중국 상해에서 암살되었고, 그 시신은 국내로 송환되어 능지처참된 후 버려졌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김옥균은 규장각(왕실도서관) 관직(종2품 내지 종3품)으로 추증되었다.
김홍집은 김옥균의 집 앞에 살았다고 한다. 관립한성중학교(훗날 경기고등학교) 단층교사는 서재필의 서양식 주택을 개보수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경기고 교사를 인수한 후, 1977년 1월 정독도서관을 개관했다. 이전 글 <여러모로 권력을 노렸던 공간, 헌법재판소 터>에서는 홍현과 성삼문 집터에 대해 언급했었다.

헐버트도 정독도서관과 인연이 깊다. 1898년 대한제국은 대관정(大觀亭, 헐버트의 집)을 매입한 후, 귀빈 접대·연회를 여는 영빈관으로 이용했다. 이후 1927년 헐버트가 살았던 대관정이 경성부립도서관(현 남산도서관)의 2번째 터가 되었고, 헐버트가 교편을 잡았던 관립한성중학교는 박정희 정권에서 정독도서관이 들어섰다. 1922년 10월 경성부립도서관이 개관한 곳은 명동의 한 2층 건물(한성병원)이었다. 이용객의 증가로 대관정으로 이전한 경성부립도서관은 해방 직후 1945년 9월 서울시립종로도서관으로 변경된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울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65년 후암동(용산구)에 현대식 도서관 전용 신축건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남산도서관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친일파의 흔적도 하나의, 역사
매국노 박제순의 집터도 정독도서관 부지에 있었다. 1883년 문과(별시)에 급제한 박제순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주사로 관직을 시작하여, 외교분야의 최고위직까지 승승장구했다. 박제순이 출세하게 된 계기는 갑오농민군의 성공적인 진압이었는데, 1894년 박제순은 충청도 관찰사로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이었고, 1910년 6월 일제에 경찰권을 넘길 당시에는 내각총리 서리, 이어 8월 경술국치 당시에는 내부대신이었다.
정독도서관 동쪽 담장 너머에는 1913년 한상룡은 접객을 목적으로 건립한 한옥(가회동)이 있는데, 한상룡은 조선재계의 1인자로 불린 친일은행가였다. 한상룡이 지은 집이 최선익을 거쳐 백인제가 소유하게 되면서, <백인제 가옥>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주택은 근대건축재료(유리·벽돌 등)을 사용하였으며, 대청에 문을 달아서 실내공간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아파트 발코니 확장으로 실내공간을 확보하듯, 이는 일제강점기 근대한옥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1920년 1월 동아일보사는 화동 중앙학교 건물에서 세워졌는데, 정독도서관 바로 앞의 한옥을 임차하여 시작했던 것이다. 1926년 12월 동아일보사가 황토현으로 사옥을 이전한 후, 중외일보사가 사옥으로 이용했다. 이전 글 <조선 기생과 일본 접대가 만나서, 요정>에서는 경성 명월관의 위치가 황토현(현 동아일보 사옥 부지)라고 언급했었는데, 동아일보사가 황토현을 사옥공간으로 선택한 이유는 조선총독부를 한 눈에 감시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동아일보사의 이런 취지가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2018년 2월 문재인은 친일행적을 이유로 인촌 김성수의 서훈을 취소했다. 이후 후손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서훈취소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2024년 4월 대법원은 유가족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전 글 <조선내내 왕가의 공간, 서울공예박물관 터>에서는 안국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감고당길은 예전부터 운치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라고 언급했었다. 감고당길을 따라 북쪽으로 걷다보면, 그 끝에 정독도서관의 입구가 나온다. 아마도 홍현일 것이다. 평일에도 관광·여유를 찾아 홍현을 통행하는 이들이 많은데,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 이 길을 지나다니던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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