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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부동산] 한국과는 다른 일본, 아파트

by Spacewizard 202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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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택유형은 다음 3가지로 구분된다.

 

단독주택 : 가장 흔함

아파트 : 2층 이하 공동주택(경량철골조) 

맨션

 

가장 흔한 주거형태는 2~3층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보통 작은 마당에 정원·주차장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아파트는 한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일본미디어를 보면 개별가구의 현관문이 바로 외부와 연결되는 형태의 공동주택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일본 아파트는 공용현관 발코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건설현장 내에 임시로 설치한 2층 규모 컨테이너박스 가건물이 일본 아파트와 유사해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목조의 2층 건물만 지칭하기도 한다. 일본의 주택명에 코포·하이츠가 포함되었다면, 2층 규모의 아파트라고 보면 된다. 주로 코포는 목조(내지 경량철골조)이며, 하이츠는 조립식으로 된 경량철골조이다. 언뜻 보기에도 구분등기가 어려워보이며, 한국의 다가구주택처럼 건물주가 임대주택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저렴하여 일본서민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방음·단열·보안·지진에 취약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아파트처럼 생긴 건물을 맨션이라 부르며, 아파트·맨션을 법적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맨션은 3층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칭하며, 철근콘크리트조·철골철근콘크리트조·중량철골조로 지어진 견고한 구조이다. 한국의 아파트와의 차이점은 단지형이 아닌 주로 단일건물이라는 것인데, 이는 이미 일본의 대도시는 대지확보의 난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한 매립지 높은 맨션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는 높이규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공용현관·발코니·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고, 1층에 높은 층고의 고급로비와 상업시설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타워형의 고층맨션은 우수한 설계(서비스면적·방음·단열·내진), 설비와 건물관리시스템(유지·보수·보안 등)를 갖추고 있어서 매매가격과 관리비가 매우 높다. 또 하나 맨션에 거주하더라도 차량·자전거 주차서비스에 대해 별도요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전 글 <맨션과 함께 화려했던, 빌라>에서 멘션의 유래에 대해 언급했었다. 

 

일본정부가 직접 매입·관리하는 임대아파트 UR단지도 한국의 아파트와 외형적으로 흡사하다. 일본 내에서 공공주택임대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으로는 동윤회(1923년)와 주택영단(1941년)이 있으며, 1955년 설립된 일본주택공단은 1960~70년대 고도성장기 동안 뉴타운 내에 임대아파트 단지들을 공급하며 주택난을 해소했었다. 1981년 일본주택공단은 사명을 도시재생기구(UR, Urban Renaissance Agency)으로 변경한 후, 역할에 있어서 정비·재생에 중점을 두었다. 일본의 신도시 개발기법 중에 하나가 뉴타운 부지 가운데 대규모 UR공단을 세우는 것인데, 주변부로 자연스럽게 상권·마을이 형성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UR은 신규공급보다는 개보수에 치중하고 있는데, 버블붕괴·인구감소·고령화의 영향이다.

 

공동주택의 기원, 인술라

 

로마제정 당시 정복전쟁 등을 통해 도시가 성장하고 인구가 급증하자, 도시 내의 도무스(고급단독주택)들은 공동주택으로 재개발되었다. 인술라는 4~5층 규모의 콘크리트조 임대주택으로, 공동주택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1층에는 상가가 배치되어 오늘날의 상가주택과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정형으로 지어진 폐쇄적인 내부구조가 마치 섬처럼 보여서, 라틴어 인술라(insula, 섬)가 붙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아파트단지는 인근의 도시요소와 비교하면 하나의 독립되고 폐쇄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도시 내의 섬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인술라는 주로 중하층민이 거주하는 주택이었는데, 층에 따라 계층이 구분되었다고 한다. 주로 2층에 중산층이 거주했고, 층수가 올라갈수록 빈민층들이 살았다. 로마제정 초기에 이미 로마시내의 인술라 비중이 도무스의 10배 이상이었다고 하는데, 공동주택으로 가득 채워진 고대로마의 광경이 선뜻 믿기지 않는다. 인술라의 소유자들은 임대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고 8~10층까지 증축을 했는데, 2000여년 전의 로마의 건축술이 우수했다고는 하나 붕괴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패·부실을 기술이 아닌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정 층수 이상부터는 콘크리트가 아닌 목재를 사용하였을 것이며, 기본적인 주거설비(화장실·주방·난방시설·수도 등)도 누락시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D 64년 인술라 밀집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로마대화재(Great Fire of Rome)로 이어졌고, 6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후 네로황제는 인술라의 층수(6층 이하)와 이격거리를 규제했다고 한다.

고대로마 인술라 재현도 [출처:위키피디아]

부유층을 위한 공동주택의 시초, 한강맨션

 

국내 최초로 선분양·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선보였던 공동주택은 1969년 주공이 분양한 이촌동 한강맨션이었다. 공사가 완료된 1층에 평형별로 한 가구씩 아파트 내부를 공개하는 방식의 견본주택이였다. 당시는 마이너스 옵션인 골조분양방식이 주류였는데, 입주자가 본인의 취향에 맞게 마감(도색·벽지·전등 등)을 진행했다. 1969년 7월 분양을 시작한 한강맨션은 중앙공급식 온수난방시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분양률이 초기 60~70%에 불과했으나, 주공직원의 내부할당 끝에 1970년 3월 분양이 완료되었다.

 

이후 유명연예인(강부자·패티김 등) 입주와 생활편의성이 알려지면서 한강맨션의 인기는 급등하였는데, 1970년 9월 준공 이후 27평형의 매매가격이 450만원(분양가 335만원 대비 약 +34%)까지 상승했다. 한강맨션의 가격상승에 힘입어, 1971년 4월 주공이 분양한 한강민영아파트 748세대는 좋은 동호수를 선점하기 위해 전날부터 수백명이 몰렸고, 1971년 10월 서울시가 완공한 여의도시범아파트 1,584세대는 2개월도 채 안되어 완판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의 도시미화·주택공급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특히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남대문 일대부터 재건했다. 1958년 1월 7일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고 한다.

 

(수도 서울의) 중심부 주요 가로에는 4층 이상의 건물을 짓되 1층은 점포로 하고 2층부터는 주택으로 사용하면 토지이용효율도 높아지고, 외국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이에 서울시내 간선도로변에 4~5층 규모의 상가주택 건설계획이 세워지면서, 1964년까지 서울에는 93개동의 상가주택이 신축되었다고 한다. 1959년 지어진 4층 규모의 관문빌딩은 서울시내 최초의 상가주택(주상복합)으로, 서울역에서 나서자마자 보인다고 하여 이승만이 명명했다고 한다. 이승만은 1960년에는 대형아파트 건설을 지시하기도 했지만, 정권몰락으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박정희 정권 초기까지도 아파트의 공급공식은 시민을 위하여 공공자금을 활용하는 것이었으나,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상승으로 중산층 이상의 주거수요를 충족할 필요가 생겼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재정에 의존하지 않는 건설비용 조달방안이 필요했었고, 당시로는 실험적인 방식 선분양 한강맨션에서 실현한 것이다. 한강맨션 견본주택 기공식에서 당시 정일권 총리는 장동운 주공총재를 봉이 김선달로 비유하기도 했다. 한강맨션 이후 국가재정에 의존하지 않은 민간주택(맨션아파트)은 시장재화로 거래되면서, 투자상품으로의 프리미엄·매각차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오늘날 국내 아파트단지들은 과거 성(castle)에 버금갈 정도로 다른 도시공간과 구분되는 섬(insula)이다. 그리고 아파트단지 주변의 정비대상지역에는 빌라·맨션이 혼용되는 2-4층짜리 공동주택(연립주택·다세대주택)이 가득차 있다. 연립주택은 4층 이하의 200평 초과, 다세대주택은 4층 이하의 200평 이하 주택을 말한다. 성 밖의 주택이라는 의미에서는 '빌라'라는 표현이 맞으며, 도시 내 주택이라는 의미에서는 '맨션'도 딱히 틀린 표현이 아니다. 다만 고급주택이었던 맨션·빌라우르바나가 아닌, 소박한 농촌주택이었던 빌리루스티카 정도로 보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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