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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금융] 글로벌 AMC의 전신, PE

by Spacewizard 202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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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IB·금융기관들이 PEF를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PE영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70년대 들면서 PE산업은 초기발전을 보였다. 1980~1990년대에는 LBO전략을 기본전략으로 하여 대형 LBO딜들이 성사되면서 PEF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이렇게 성장한 PE들은 누적된 경영전략·경험·투자네트워크을 바탕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경영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 글로벌 대형 AMC(Asset Management Company, 자산운용사) 중에는 M&A자문이나 PE로 시작한 후, AMC 영역(전통투자·대체투자 등)으로 확장한 경우가 많다. 1980년대 등장한 베인캐피탈·블랙스톤·칼라일과 텍사스퍼시픽그룹(1992년 설립)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워버그핀크스(Warburg Pincus, 1966년 설립)는 헬스케어·에너지·금융·기술 분야에서의 투자로 유명한 PE였다. 워버그핀크스는 한때 다음의 글로벌 Big4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2021년 3분기에는 국민연금(NPS)의 해외부동산 부문 위탁운용사로 신규편입되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ohlberg Kravis Roberts, KKR, 1976년 설립)

블랙스톤(Blackstone, 1985년)

칼라일(Carlyle, 1987년)

텍사스퍼스픽그룹(Texas Pacific Group, 1992년)

 

1970년대 설립된 PE 중에서 가장 성공한 한 회사는 KKR(Kohlberg Kravis Roberts, 1976년 설립)일 것이다. 제롬 콜버그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Bear Stearns)의 파트너였는데, 1965년 첫 LBO딜을 클로징한 이후 여러 LBO딜을 수행했다. LBO(Leveraged Buy Out, 차입인수) 전략은 기업인수대금의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사실 LBO라는 용어는 1970년대 들어 등장했는데, 그 전에도 오랜 기간 차입인수 형태의 딜은 존재했었다.

 

조지 로버츠는 콜버그 아래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조지 로버츠의 헨리 크래비스(로버츠 사촌)는 각각 1968년과 1969년에 콜버그팀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이후 콜버그팀은 연이은 LBO딜 성사, 투자자풀 확보, 딜소싱을 위한 IB와의 관계구축을 강화해 갔지만, 회사 내부의 강한 견제(비협조 포함)를 받게 되었다. 결국 1976년 LBO딜이 이유없이 부결 당하자, 미련없이 퇴사한 콜버그팀은 KKR을 설립했다.

 

보통의 월급쟁이들은 퇴사를 은퇴라고 생각하면서,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억울한 감정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업조직 내에서 최상위급 실적을 유지하는 팀들은 퇴직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직에 대한 명분을 회사·동료가 제공해 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KKR에게 초기투자금을 제공한 투자자는 헨리힐먼 가문(Henry Hillman Family, 피츠버그)으로, 미국 부호가문 중의 하나이다. KKR은 LBO전략을  활용한 대형 인수거래들을 주도하면서, 초의 LBO 전문 PE로 불리게 된다. 

 

KKR의 차별화한 전략은 블라인드펀드(blind pool fund)의 도입이었는데, 그 전까지 블라인드펀드는 VC업계에서 주로 활용하던 방식이었다. 블라인드펀드는 PE의 파트너가 GP(General Partner, 운용자·무한책임사원) 역할을 맡아서, 투자의사결정(딜소싱·투자실행, 기업가치 향상 등)을 전적으로 수행한다. 이에 반해 LP(Limited Partner, 투자자·유한책임사원)는 약정한 금액범위 내에서 투자만 할 뿐 투자의사결정에 관여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블라인드펀드 구조는 자율적 경영활동을 가능케 하면서 기업가치 향상에도 큰 기여를 했다. 이전 글 <필요는 하지만 여러 오명을 가진, 업무대행사>에서 업무대행사와 조합·조합원을 GP와 LP에 비유했었다.

 

이후 KKR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역합병 방식(자금조달 및 절세 목적)을 창의적으로 딜에 적용하면서, 1980년대 LBO를 통해 급성장하게 된다. 1987년 콜버그는 콜버그앤컴퍼니(Kohlberg &Co)를 설립하면서 KKR를 떠났는데, 아이러니한 부분은 LBO딜로 최정상에 오른 콜버그가 KKR의 대규모 공격적인 LBO딜 전략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문 앞의 야만인들에서의 담배·식품업체 나비스코(RJR Nabisco) 인수전은 역사상 가장 큰 LBO로 손꼽히는데, 책제목은 포스트만 리틀과 연관있다. 포스트만 리틀(Forstmann Little, 1978년 설립)도 1980~1990년대 굵직한 LBO딜을 주도하였으며, 특히 고금리채권(High Yield Bond, Junk Bond)의 활용을 지양하는 투자전략으로 유명했다. 포스트만이 크래비스의 돈을 <가짜 정크채권>, 크래비스·로버츠를 <진짜 돈을 가진 진짜 사람들>이라고 발언했으며, 크래비스와 같은 공격자(야만인)을 막기 위해 성문을 통해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했다.

 

텍사스퍼시픽그룹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뉴브릿지캐피털(Newbridge Capital)의 모회사였기 때문인데, 1999년 뉴브릿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을 인수했었다. 1994년 텍사스퍼시픽그룹과 블럼캐피탈(Blum Capital)의 합작으로 설립했고, 이는 아시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전 글 <금융이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 건정성>에서는 외환위기 당시에 IMF에서 BIS비율이 8% 미만의 부실은행 정리를 요구했고, 이 중에는 제일은행이 포함되었었다고 언급했었다. 2000년대 중반 텍사스퍼시픽그룹은 글로벌 확장과 투자영역 확대를 위해 브랜드를 <TPG>로 재정립하였는데, 이 때 TPG의 PEF 부문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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