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역사를 보면, 마산사람들의 강렬한 기질이 어떻게 생겨났을지 가늠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왜구의 노략질이 판을 쳤으며, 원나 라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주요 전투지를 거쳐 구한말 개항장(일본인 집단거류지 포함)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 군수물자 하역항이었고, 4·19와 부마항쟁의 진원지였다. 도시의 기질은 음식에 반영되면, 마산은 맵고 자극적인 아귀찜이 유명하다.
일본 하카타만(규슈 북부) 연안에는 20㎞ 가량의 해안성벽이 있는데, 원구방루(元寇防壘, 겐코보루이)라고 부른다. 가마쿠라 시대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것이다. 고려 충렬왕대 여원연합군(4만 병력)이 합포(현 마산)를 출전기지로 삼아 2차례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하카타만 앞에서 태풍으로 인해 실패했다. 이후 합포는 남해안 전략요충지로 유명해졌다.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하늘이 지켜주는 신의 나라로 착각하게 되고, 여원연합군을 물리친 태풍을 신풍(神風, 가미카제)이라면서 숭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언론이 음독 신푸톳코타이(神風特攻隊)를 훈독 가미카제(カミカゼ)로 읽으면서, 지금까지 가미카제라는 표기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에 따라 세곡을 관리·운송하는 조창이 주요 고을에 설치되었고, 관원·상인이 유입되면서 성장했다. 1760년(영조 36) 마산포는 마산창이 설치되면서 시장이 번창했고, 조선 3대 수산물 집산항(동해원산·서해강경·남해마산)으로 성장했다. 조선시대 경상도 정기시장은 마산장이 유일했다는 말도 있고, 인근 지역(거제·통영·고성 등)에서 잡힌 어류는 마산항으로 모였다. 구한말 물산을 중개하고 상업을 이끌던 객상(객주·여각)이 30여 호에 달할 정도로 번화했다. 1899년 5월 1일 마산항이 개항되었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마산에 대한 지배권을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조계지(현 신마산 일대)에 지바촌(千葉村, 천엽촌)이 건설되었는데, 일본 보소반도(치바현) 출신의 어민들과 이주민들이 대거 들어와 집단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치바현 사람들은 근대식 어업기술(기선 저인망 등)으로 마산포의 수산물 유통망을 잠식해갔다. 치바현(千葉県, 풀·나무가 무성한 고장)은 도쿄의 바로 동쪽에 인접하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보소반도) 형태를 띄고 있다. 지바항은 일본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항구 중 하나이다. 나리타 국제공항과 도쿄 디즈니가 위치하며, 수산물 외에도 땅콩 생산지로 유명하다. 마산창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의 전통 거주지인 원마산(신포동·오동동 일대)과 일본인 중심의 근대 계획도시인 신마산(월영동·문화동 일대)으로 도시가 양분되었다.
해방과 함께 마산에 거주하던 6,000여명의 일본인이 모두 돌아갔고, 그 자리를 3배수가 넘는 2만여명의 조선인이 유입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후방 병참기지였으며, 마산 제1부두는 전쟁물자의 집산지였다. 피난민으로 인해 생겨난 음식이 아귀조림·미더덕찜이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께서 콩나물향과 전분기 가득한 미더덕찜을 많이 해주셨고, 잔치집에서도 미더덕찜은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먹어본 지 20년이 넘어 가는데, 그 시원한 맛이 그립다. 과거 그물에 걸린 아귀는 선창가에서 버려졌는데, 재수없다는 속설 때문이다. 농부는 버려진 아귀를 비료로 사용했다. 하지만 피란민에게 아귀는 귀한 단백질 공급였었고, 1960년대 아귀찜이 탄생하기 전까지 조림으로 먹었다고 한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김윤석 분)는 한번 입에 문 것은 절대로 놓지 않는 지독하고 잔인한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불교에서 아귀(餓鬼)는 생전에 탐욕·질투가 많았던 자가 사후에 변하는 괴물로, 바늘구멍처럼 좁은 목구멍과 산만한 배를 가지고 있다. 이전 글 <윤회의 공간, 구천>에서 중생이 윤회하는 구천 중에서 1천·2천을 아귀축생이라고 언급했었다. 늘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 고통에 시달린다. 도박판의 아귀는 돈을 아무리 따고 상대를 파멸시켜도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탐욕으로 타인의 피를 말리는 잔혹함을 상징한다. 생선 아귀도 한 번 먹이를 입에 물면 절대 놓치지 않는데, 안쪽으로 돋은 이빨 때문이다. 잡은 생선을 통으로 삼켜 버리는 모습과 뱃 속의 다양한 속것(주로 생선)을 보면, 불교의 아귀이 절로 생각난다. 타짜 아귀는 전재산은 물론 손목까지 걸면서 상대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손목을 잃게 된다. 노련한 평경장(백윤식 분)조차도 아귀를 두고 인간이 아닌 악귀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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