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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역사] 아차의 흔적, 아천

by Spacewizard 202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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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아천리(구리시)가 공식지명이 되었는데, 아천(峨川)은 다음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차동(嵯洞, 아치울) : 아차산 동쪽 골짜기 마을

우미리(牛尾里, 우미내) : 소 꼬리 형상의 골짜기

 

우미(牛尾)는 산 안쪽으로 길게 자리한 마을의 지형이 소꼬리와 닮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바위산임에도 소나무를 베어내도 움(牛)이 잘 튼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다. 어쨎든 아천은 산·내를 품은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면서 아천동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대 이후 아치울마을에는 많은 문학·미술·연예계 인사들이 정착했다. 1981년경 이이화(역사학자)가 자리잡았고, 박완서도 말년에는 아치울 개울가의 노란색 집에서 집필했다. 이후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면서, 자연 속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연예인 중에서는 박진영·현빈 등이 고급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아차산은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지형으로,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지배하던 시기(475년~551년)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475년 장수왕이 한성(백제 수도)을 함락한 이후, 고구려는 80여년 동안 20여개의 보루를 축조했다고 한다. 551년 신라·백제 연합군이 한강 유역을 탈환한 후, 2년 후인 553년 백제를 배신한 신라가 한강 하류를 독점했다. 590년경 온달 장군(고구려)은 아차산성 인근의 전투에서 신라군에 의해 전사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아차는 '아깝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577년경 봄철 수렵행사에서 갑자기 등장한 온달은 북주(수나라 전신)와의 전쟁에서의 대승으로 고구려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후 10여 년간 부귀영화를 누렸다. 

 

아차산·아치울의 발음상 유사성은 동일한 어근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대 문헌들에서 현재의 아차산(峨嵯山)이 아차(阿且·峨嵯)로 기록되어 있다. 아차산 골짜기 마을은 과거부터 아치울(아차산 아래의 마을)로 불렀다. 은 고구려어·백제어 (내지 )이 변형된 말로, 마을·성곽을 의미했다. 홀(忽) 내지 구루(溝漊)가 훗날 골(고을)로 변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위례홀(한성), 매홀(수월), 잉홀(진천)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어 구려(句麗)가 성곽도시·고을을 의미하는 어근이라면, 고구려(高句麗)는 큰 고을(나라)나 높은 성곽을 뜻했을 수도 있다.

 

매홀(買忽, 물골)은 수원시(경기도)의 가장 오래된 고유지명이다. 마한 모수국(牟水國)은 고구려 매홀군(買忽郡)이 되었는데, (買물)는 (牟)와 같은 계열의 '물·못'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모수·매홀 모두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이후 통일신라 경덕왕대에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고려에서는 수주(水州)로 변경되었다. 수원 서부의 호매실(好梅實, 매실이 잘 열리는 마을)은 매홀과는 관련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매곡면(수원부) 일대에서 매화나무가 많이 자생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1914년 매곡면의 여러 마을(호매실·자목리·가리미 등)을 통합하여 공식지명(호매실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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