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MBC 월화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와 함께 장현철이 부른 동명의 주제가가 히트를 쳤다. 중2 겨울방학에 방영된 드라마 본방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부모님이 드라마 시청을 금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마산·창원은 고입연합고사 커트라인이 워낙 높았다 보니, 저녁 8시 이후 TV시청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방문 밖 거실에서 들려오는 주제가를 들으면서 위안을 삼았었다.
1979년 문순태의 소설 '걸어서 하늘까지'가 일간스포츠에서 연재되었는데, 이후 이를 원작으로 하여 1992년 영화에 이어 1993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사건 중심의 영화는 인물들의 파국이 더 급격하게 느껴지는 반면, 드라마는 장시간 축적된 감정과 주제곡으로 인해 이별·희생의 여운이 더 길게 남는다.
영화는 소매치기 인생을 사는 물새(정보석 분)과 지숙(배종옥 분), 그리고 부자집 도련님 정만(강우석 분) 사이의 사랑과 비극을 담고 있다. 물새가 지숙을 패거리로 받아 들이면서 짝사랑이 시작되지만, 지숙은 정만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약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지숙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세사람의 관계는 한번에 무너지게 된다. 물새는 죽음 직전에 놓인 지숙의 오빠를 병원으로 옮긴 후, 수술비를 마련하려다 우발적으로 마약조직의 두목을 살인하게 된다. 물새는 모든 것을 감당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지숙은 그 장면을 보며 오열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사랑·희생 보다는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덫(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19살의 임창정이 물새의 패거리로 나오고, 중년미 물씬 풍기는 김용건이 마약조직의 두목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소매치기 아버지 아래에서 의남매처럼 자란 종호(최민수 분)과 지숙(김혜선 분)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감정이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사람은 성장하면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거친 삶을 사는 종호와 달리, 지숙은 에어로빅 강사를 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지숙은 부유한 집안의 연수(손지창 분)와 얽히고, 종호는 지숙을 향한 감정과 자신이 속한 어두운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호의 희생과 지숙의 선택이 맞물리면서 비극성이 강해지는데, 대부분의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짝사랑하는 여자의 선택을 두고, 남성들은 소주 한잔과 함께 자신의 희생 내지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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