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

[음식] 생각보다 오래된 습관, 식후 커피

by Spacewizard 2026. 6. 28.
반응형

1883년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은 보빙사(미국 수호통상사절단) 일행을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당시의 경험을 담은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 A Sketch of Korea)를 출간했다. 대항항공 스카이패스의 회원등급 중 하나인 모닝캄이 떠오른다. 1884년 로웰은 고종의 초청으로 조선을 방문하여 사진기록을 남겼는데, 고종의 어진사진을 찍은 최초의 외국인이다. 그의 저서에는 커피에 관한 다음의 내용이 담겨있다. 

 

1884년 1월의 어느 추운 날,

조선 고관(경기도 관찰사)의 초청으로 한강변 별장에 유람을 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잠자는 물결'이라는 누대에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던 '저녁식사 후 커피(after-dinner coffee)'를 마셨다.

 

1880년대 양반들 사이에서는 석식 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위 기록은 김홍집이 담담정(淡淡亭)으로 초청한 것이라고 한다. 이전 글 <뒤늦게 만들어진 배신 아이콘, 신숙주>에서 신숙주 이후 담담정은 터만 남았다고 언급했었는데, 언제 담담정이 재건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신숙주의 후손들이 담담정 터에 계속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담담정 동쪽 지척에 위치한 영벽당(안평대군 별서)도 월산대군의 풍월정-세심정-집승정 등으로 모습을 바꿔왔다. 담당정이 사라졌던 기간 동안 언덕 아래의 읍청루(용산별영)의 명성이 자자했는데, 읍청루는 족한정(사강나루)·탁영정(상수동)가 함께 제일 강산루로 불렸다. ​

 

고종이 커피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계기는 아관파천(1896년)이었으니, 민간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근무하던 독일인(앙투아네트 손탁)이 고종에서 커피를 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알렌의 일기에도 궁중에서 홍차·커피를 대접받았다고 적고 있다. 고종은 정관헌(덕수궁 서양식 건물)에서 커피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 글 <오랜시간 차단된 공간에서 열린, 송현>에서는 조선 후기 사실상 국가권력을 장악한 귀족화한 양반을 경화세족(서울양반)이라고 언급했었다. 19세기 유행(사치품·신문물)에 민감했던 경화세족들이 국왕보다 훨씬 이전부터 서양문물을 소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경화세족들은 고종보다 10~20년 전부터 커피를 즐겨 마셨을 가능성이 높으며, 국왕이 커피를 즐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커피의 선호도·소비량이 높아졌을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