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한양에서 개성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2개의 고개가 있다.
혜음령
됫박고개
혜음령(惠陰嶺, 그늘에 은혜를 입은 고개)은 고양·파주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도적떼들이 자주 출몰했던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도 도적의 공간으로 혜음령이 등장한다. 고려시대 혜음령은 개성과 한양을 잇는 주요고개로, 의주길의 길목에 위치했다. 혜음령에 있는 혜음원은 숙박시설과 사찰의 기능을 했으며, 왕의 남행시에는 행궁의 역할도 했다. 혜음원지에 세워진 용미리 석불입상(마애이불 입상)은 혜음령을 내려다보면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는데, 2개의 석상(남상·여상)은 각각 원형과 네모진 모자를 쓰고 있다. 이는 눈비로부터 석상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용미리 석불입상에 대한 전설이 있다. 고려 선종은 후사를 위해 원신공주를 후궁으로 삼았는데, 어느 날 밤 원신공주의 꿈에 2명의 도승이 나타났다. 장지산(파주)에서 사는 이들은 식량이 없는 상태였으며, 장지산에 있는 2개의 바위에 불상을 세워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위해 불상을 만든 원신공주는 득남(한산후 물)했다고 하는데, 이후 이 공간은 득남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선종은 후사가 없지 않았고, 한산후 물은 헌종의 이복동생이었다.
됫박고개(구 덕파령)를 사이에 두고, 벽제동 공동묘지와 보광사가 위치한다. 조선시대 덕파령(德坡嶺)은 임진왜란 이후 퇴패현(退敗峴)으로 달리 불리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의 명군이 혜음령을 지나면서 왜군에게 크게 패한 후에, 전력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평양으로 물러났다. 퇴패는 이여송의 소행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붙여졌다. 영조는 됫박고개를 더 낮게 파내라 하여 더파기고개로도 불리는데, 그 고개가 자신과 생모의 묘(소령원) 사이를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국내 첫 9홀 퍼블릭, 올림픽CC
올림픽CC는 혜음령 자락에 위치한다. 올림픽CC 초입에 세워진 돌비석에는 노자의 글귀가 써여져 있다.
허심종도(虛心從道) : 마음을 비우고 도를 따르라
골프장에 들어와서는 욕심을 버리고 순리에 따라 운동하라는 의미이다. 이관식은 아이스하키(경복중·중동고·연세대) 학생대표를 거쳐, 1969년 한국일보에 스포츠기자로 입사했다. 1975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선더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이후, 폴라로이드 본사(보스턴)과 일본·홍콩에서 근무(극동 마케팅매니저)하게 된다. 1986년 피자인(미국 피자체인점)을 국내에 들여와, 66호점까지 개설하기도 했다.
1961년 실향민 출신 이제민(이관식 부, 연세대 상과대학 교수)은 북한과 가까운 군사보호구역 내 부지(14만평 가량)를 매입했는데, 1980년대 초반 국민은행과의 매매거래이 불발되면서 이관식은 골프장 사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1991년 올림픽CC(1988년 허가)을 개장했는데, 국내 첫 9홀 퍼블릭이었다. 골프장명은 스포츠기자로서의 경험과 함께 국내 첫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경사가 심한 악산이라 계단식 골프코스로 설계되었고, 국내골프장 중에서 라이트시설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이관식은 올림픽콜로세움 대표이사로 올림픽CC, 씨티칼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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