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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조선] 5개 관도의 세분, 대로

by Spacewizard 202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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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한성을 중심으로 한 국도, 관도>에서는 조선시대 한성에서 5개의 방향으로 연결된 국도체계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5개의 관도는 10개의 대로로 세분화되기도 했다.


1로(의주로) : 북방의 군사·외교적 간선
2로(경흥로) : 북동쪽 국경(두만강)과 연결
3로(관동로·평해로) : 관동과 연결
4로(중부로) : 중부(충주·제천·단양·봉화)로의 연결
5로(영남대로) : 영남(대구·동래)로 연결된 남부간선
6로(기호로) : 경기·호서과 연결
7로(호남대로) : 서남부(호남)과의 연결
8로(충청수영로) : 충청수영(보령현)과 연결하는 해안로
9로(서해안로) : 서해연안(황해·평안·경기)과 연결하는 해안로
10로(삼남대로·제주로·해남로) : 한·제주를 잇는 가장 짧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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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남서로 뻗은 대로, 조선


조선에서 가장 중시했던 도로는 의주로였는데, 사행로(使行路)·연행로(燕行路)로도 불렸다. 당시 대중국 외교·교역·사신왕래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인프라(관사·숙소 등)도 타 대로에 비해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경흥로는 두만강 하부의 영흥부(이성계 고향)를 잇는 도로로, 북방과 무역(명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주로·경흥로에 위치한 역참으로는 구파발역·홍제원·퇴계원 등이 대표적이었다.

 

관동로는 강원 동부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관동팔경 유람로로 유명하다. 관동(關東)철령관 동쪽의 강원도 일대를 칭하는 명칭이었는데, 철령관(鐵嶺關)은 영서·영동을 구분하는 고갯길이었다. 기호(畿湖, 경기·호서)에서 호서(湖西)는 충청도를 의미하는데, 상상 속의 (湖, 호수)에 관해서는 다음 설들이 있다.

벽골제(碧骨堤) : 김제(전북) 저수지
의림지(義林池) : 제천(충북) 저수지,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
호강(湖江) : 현 금강(錦江)

 

보통 벽골제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벽골제를 중시했다. 전라도는 호남(湖南)이라 불린다. 평해로는 평해군을 종점으로 하는 개념의 도로로, 조선시대 평해(平海)군은 울진군 아래에 위치했었다. 1914년 평해군은 울진군으로 통폐합되었다.


중부로는 광나루에서 출발하기도 했는데, 수운(남한강)과도 연계되어 있어서 수상교통·육상교통이 이어지는 중요도로였다. 영남대로는 일본과의 외교·군사적 교류에서 의미가 컸지만, 개항 이후 철도(경부선)와 신작로가 생겨 나면서 그 중요성이 감소했다. 영남대로(380km 가량)는 현재의 경부선보다 짧았지만, 전근대에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매우 효율적인 계획도로였다. 호남대로는 국도 1호선의 모태가 되었다.

육로교통의 축, 삼남로


삼남대로(삼남로)는 해남군에서 끝나는 길로, 육로교통의 중심축이었다. 정도전·정약용이 각각 나주·강진으로 유배를 가면서 삼남로를 이용했고, 정조도 현륭원(현 융릉, 사도세자묘) 행차길로 이용했다. 삼남로의 주요 경로와 한강북변까지 도달하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한성-노량진-남태령-인덕원-수원-

평택-천안삼거리-공주-논산-

삼례-정읍-장성-광주-

나주-영암-해남-제주

 

숭례문-이문동-주교-청파역-

(경로1) 석우참-와요현-반전거리(飯廛巨里)-동작진
(경로2) 석우참-둔지산-서빙고진-당현-만초천-습진기

 

습진(習陣)은 군사훈련을 의미하며, 습진기(習陣基)는 습진이 이뤄지는 장소이다. 정확하게 지목할 수는 없지만, 당시 한강북변(노랑진 건너) 모래사장 어디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 경로들 외에도 흥인문을 지나서 왕십리-신천-송파를 지나는 길도 있었다고 한다.
 
이문골(현 후암동)은 남관왕묘의 이문(里門,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세운 마을입구문)에서 유래했는데, 남관왕묘(南關王廟, 남묘)는 임진왜란 당시 관우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숭례문 밖(현 서울역 건너편)에 세운 사당이다. 참고로 동묘는 흥인지문 밖(현 신설동)에 건립되었다. 진인(명나라 장수)는 왜군과의 전투에서 관우가 자신을 보호했다는 명분 하에 관왕묘를 세운 것인데, 이후 관우신을 모시는 민간신앙까지 확산되었다. 실제 관왕묘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왜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남묘는 한국전쟁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는데, 1979년 대우빌딩·힐튼호텔이 건립되면서 사당동으로 이전되었다.
 
만초천(蔓草川)인왕산·무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로, 지류(남산골짜기에서 서쪽으로 흐름)과 남영역 부근에서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연산군대 만초천을 건너는 청파주교(청파배다리)를 놓았고, 일제강점기 만초천 본류 일대가 철도부지에 편입되면서 물길이 변경되었다. 1961년 만초천 복개공사가 시행되면서 청파로가 들어섰다. 석우(石隅, 돌모루)는 현 남영동 굴다리 부근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그 지점에 역참이 있었던 모양이다. 석우참에서는 3갈래로 분기되었다고 한다. 반전거리(飯廛巨里, 밥전거리)는 밥을 파는 집들이 밀집되었다 하여 생긴 지명으로, 현 삼각지 부근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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