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지속되는 와중에 토지개혁 지연과 경제난은 민중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이 틈을 타서 볼셰비키는 다음의 모토를 내세워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 세력을 규합했다.
전쟁 중지
토지 몰수
공장 노동자 관리
이전 글 <변화되어 온 혁명사상, 공산> 1917년 볼셰비키혁명(10월 혁명, 러시아 혁명)은 볼셰비키가 이끈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마르크스 사상을 현실국가에 적용한 최초의 사례라고 언급했었다. 10월 혁명은 5년 후인 1922년 소련(소비에트연맹)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그 사이에 러시아 내전(1917~1922)을 초래했다.
혁명의 처음과 끝을 다룬,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닥터 지바고는 유리 지바고(의사·시인)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로, 20세기 초반 격변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지바고는 부유한 집안 출신 아내(토냐)와 가정을 꾸리며 안정된 삶(가족애, 의사로서의 책임)을 추구하나, 간호사 연인(라라)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격정적 사랑(개인적 자유, 예술적 영감)에 빠진다. 소설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며서 개인의 자유·사랑을 찬양하고 있는데, 지바고는 어려운 상황(빨치산 납치, 가택수색, 기아)에서도 시를 쓰며 인간존엄을 지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모스크바 가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1905년 1월 차르 전제정에 대한 대규모 반란이 발생했는데, 피의 일요일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배로 인한 경제난(인플레이션·실업)이 심화되고 있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12만명이 겨울궁전으로 청원행진(게오르기 가폰 신부 주도)했으나, 근위군이 수백명을 사살했다.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인해 니콜라이 2세의 작은 아버지 이미지는 무너졌고, 10월 전국 총파업과 함께 소비에트가 탄생했다. 차르의 >10월 선언(드루마 설립·언론 자유 일부 허용)을 끌어냈으나, 결국 혁명은 탄압으로 진압되었다. 1905년 혁명은 12년 후 발생한 2월·10월 혁명의 리허설로 평가되고 있으며, 노동자 정치력의 각성(소비에트 조직화, 볼셰비키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905년 12세의 지바고는 혼란기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게 되는데, 그 해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17세의 라라를 처음 목격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지바고가 군의관으로 동원된 후, 멜니코프 야전병원에서 9년 만에 라라와 재회한다. 라라는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종군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군의관과 간호사로서 6개월 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사랑을 키웠지만, 이후 외부요인(혁명·내전)과 내적갈등(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별을 반복한다.
1958년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했으나, 소련정부의 압박으로 수상을 거부했다. 1960년 파르테르나크가 사망한 지 27년 만인 1987년, 스웨덴 아카데미는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아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1989년 소련에서도 닥터 지바고가 공식출판되었다. 참고로 1964년 사르트르(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는 자발적으로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바 있는데, 이는 작가가 제도화·권위화되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적 실천이었다고 전해진다.
사회주의를 뿌린 조선인, 이동휘
이동휘는 단천(함경남도) 출신으로, 1895년 한성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참위로 임관했다. 개혁당·신민회 활동으로 항일계몽운동에 참여했다가,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1913년 북간도·연해주로 망명한 후, 1918년 4월 볼셰비키 지지파(이동휘·김립 등)는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 한인사회당(극동소비에트정부 후원)을 창립했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여파로 만들어진 한인사회당은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평가된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조선 내에서도 공산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좌절감에 빠진 민족의 허무한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지식인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상이 점점 매료되어 갔다. 1919년 8~9월경 이동휘(한인사회당 위원장)는 연해주에서 상하이로 이동하여 임시정부(이승만 대통령)에 합류했고, 초대 국무총리로 선임되었다. 이동휘는 러시아 원조 유치와 군사체계 강화를 주장하면서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기반을 마련했으나, 1921년 3월 이동휘는 반공세력과의 갈등으로 국무총리직을 사임했다. 이후 공산운동에 전념한 이동휘는 1937년 소련에서 병사했으며,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20년 이르쿠츠크(바이칼호 연안)에서 고려부를 중심으로 한 공산당 지부(김철훈 주도, 코민테른 지원)가 조직되었는데, 같은 해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21년 한인사회당은 상해파고려공산당(고려당)으로 발전했다. 당시 상해파가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반면, 이르쿠츠크파는 이중노선(민족독립+사회주의·혁명)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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