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마이애미에서 할로윈을 보냈는데, 어학원 내 다국적 학생들이 각양각색의 커스튬과 분장으로 변신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저녁에는 인근의 링컨로드를 거닐면서 활기찬 분위기를 즐겼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다소 쌀쌀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젊은 세대(유치원생 포함) 사이에서는 할로윈 축제를 챙기는 분위기였는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면서 전국민이 할로윈데이를 알게 되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 10월
이전 글 <공화를 향한 투지, 아일랜드>에서 43년경 로마가 옥토를 목적으로 그레이트 브리튼을 침공할 당시, 켈트족(Celtic, 셀틱)이 브리튼섬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언급했었다. 2,000여년 전 켈트족(브리튼섬, 프랑스 북부 등)은 일년을 10개월로 봤다. 한 해의 마지막 날(10월 31일)에는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와의 경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했으며, 이 시기에는 죽은 영혼이 이승으로 내려와 떠돌아 다닐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영혼이 따뜻한 곳을 찾아 온다고 여겼다.
켈트족은 드루이드를 중심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모닥불을 피워 제사(노래·춤 포함)를 지냈다. 이 의식을 사윈(Samhain)이라 했다. 바깥공간에서 불을 피우니 영혼들이 따뜻한 곳으로 몰려 들었을 것이며, 사람들은 영혼을 쫓기 위해 동물의 가죽·가면을 쓰지 않았나 싶다. 드루이드(druid)는 켈트족에서 종교적·사회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고위 전문직 계급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드루이드의 영향력이 황제보다 크다고 여겼기에, 정치적 위협요인으로 보고 탄압했다고 한다.
카톨릭식으로 변하면서, 할로윈
가톨릭의 교세가 확장되던 9세기 이후, 사윈이 카톨릭식으로 변형되게 된다. 가톨릭에서는 성인과 위령을 기리는 날이 다음과 같이 있었다.
11월 1일 : 만성절(All Saints' Day)
11월 2일 : 위령의 날(All Souls' Day)
중세에는 만성절(All Saints' Day)을 올 할로우스(All Hallows)라 불렀다. 중세영어로 성인(Saint)가 할로우(hallows)로 불렸었고, 여기에 스코틀랜드어 인(e'en)이 붙인 것이 할로윈의 어원이다. 중세영어 이브닝(evening, 저녁)이 스코틀랜드어로 변형된 말이 인(e'en)이며, 이는 이븐(even)의 축약형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서의 이브(Eve)도 이브닝의 줄인 말로, 특별한 날의 전날 저녁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서양력으로는 자정부터 하루가 시작하지만, 과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해질녘으로 삼았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할로윈의 대표적인 풍습으로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사탕·초콜릿을 나눠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것이라 외치면서 집집마다 돌아 다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분장한 아이들이 집들을 방문해 맛있는 것을 받은 후, 노래나 시낭송으로 답례를 한다. 이 풍습은 중세 스코틀랜드·아일랜드에서 유래한 소울링(Souling) 관습과 연관되는데, 당시 가난한 이들은 11월 1~2일에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대가로 음식·동전을 받았다. 영국에서도 11월 2일에 빈자들이 부자집에서 소울케이크(soul cakes)를 받은 대가로, 조상들을 위해 대신 기도해 줬다고 한다. 이러한 기브앤테이크도 켈트족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윈이 끝난 후면 친지들과 음식을 나누거나 작은 선물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스페인 점령 이전, 멕시코에도 10월 31일부터 3일 간(11월 2일까지)을 이어지는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이라는 명절이 있었다. 스페인에 의해 카톡릭으로 개종되면서 망자의 날은 카톨릭식으로 편입되었다.
미국에 할로윈을 전래한, 아일랜드
미국 청교도는 할로윈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는데, 이 배경에는 이교도(켈트족)의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점과 악마숭배 논란이 있었다. 청교도의 눈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돌아오는 시기에 사윈을 치르는 모습 자체가 악마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대기근을 피해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트릭 오어 트릿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1950~60년대 베이비부머의 탄생과 함께 기업들이 트릭 오어 트릿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할로윈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업적 명절로 남게 된다.
잭오랜턴(Jack-o'-lantern)은 호박에 기괴한 얼굴을 새겨 불을 밝힌 것으로, 아일랜드 전설 속의 스팅지 잭(Stingy Jack)에서 유래했다. 장난이 심했던 잭은 천국·지옥 모두에서 거부 당하면서, 악마가 준 숯불를 순무(turnip) 안에 넣은 채 구천을 영원히 떠돌게 되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순무 대신 호박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구하기 쉬우면서도 크고 파기 쉬운 호박(pumpkin)을 사용하게 되었다. 잭오랜턴을 문 밖에 두게 된 이유는 영혼(잭 포함)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고, 영혼을 물리치기 위해 집 안을 차갑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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