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캄보디아에서 한국 대학생이 사망하면서, 캄보디아의 사기범죄 행태가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수 년 전부터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행해지던 비인간적인 사기범죄(피싱, 리딩방, 구매대행, 로멘스 스캠 등) 행각이 공공연히 퍼져 있었지만, 이제서야 국가적으로 이슈화가 된 것이다.
미국·영국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프린스그룹)에 대한 제제조치를 이미 내렸고 소송까지 진행 중이라 하니, 금융사기 행태와 자금세탁 정황을 한참 전에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법무부가 몰수하기 위해 압류한 비트코인은 127,271개(12조원 수준)인데, 지금까지 미 법무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몰수사례이다.
미국의 비트코인 전략, 몰수
엄청난 양의 비트코인을 미국정부가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또 다시 비트코인 지갑에 대한 보안이슈가 도마에 올랐다. 사실 범죄조직이 소유한 비트코인이 해킹을 당한 후에, 미국정부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그 해킹된 비트코인을 압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비안(LuBian)은 암호화폐 분야에서 유명한 중국계 비트코인 채굴 관리집합체(풀)로, 물리적 장소가 아닌 서버 및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한다. 범죄수익이 루비안을 통해 자금세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2020년 루비안에서 해킹된 비트코인 개수가 12.7만개 가량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해킹은 취약한 지갑생성방식이 문제였는데, 약한 알고리즘으로 인해 무작위 대입공격(Brute force attack)이 가능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무작위 대입공격을 범위가 더 넓어질 가능성은 분명 있어 보이다.
트럼프는 범죄자금으로 압수된 비트코인은 절대 팔지 않고 미국정부에 귀속시킨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압류된 비트코인은 미국의 비트코인 보유량 증대에 기여할 것이며, 이는 통화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견제하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실제 미국은 프린스그룹의 비트코인을 몰수함에 따라, 기존에 보유하던 비트코인 20만개에 12.7만개를 더하게 되었다. 당장은 보안 이슈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정부에 묶이는 비트코인이 많아질수록 매도 가능한 물량은 줄어들게 되고, 이는 비트코인의 가격과 위상을 높이게 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암호화폐를 국가전략자산으로 인정하고, 미국을 암호화폐(비트코인 포함)의 중심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금지와 맞물린 정책을 강하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암호화폐에 진심이라는 사실은 가족기업이 비트코인 채굴사업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중국인이 만든 범죄도시, 캄보디아
2013년 캄보디아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막대한 중국자본과 함께 중국계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미얀마로 들어 왔다. 2019년 중국정부가 캄보디아 현지 온라인 도박을 강력하게 단속하자, 기존 카지노·호텔들이 비게 되었다. 이러한 빈 건물에서 스캠범죄에 활용되면서, 범죄단지가 되었다.
스캠(Scam)은 타인을 속여 금전·정보를 부정하게 빼앗아 가는 사기범죄 행위를 의미하는데, 스캠단지(Scam Compound)는 주로 동남아시아(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필리핀 등)에서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대규모 범죄시설이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마지막 전투장면을 보면서, 그 배경이 되는 단지형 콘크리트 건물들 궁금했었다. 그저 용도가 없어서 버려진 공간이거나, 영화촬영용으로 만들어 낸 공간으로만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 장기척출이 시행되거나 사기범죄가 행해지는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진다.
캄보디아에서 행해졌던 사기범죄를 돼지도살(杀猪盘, 키워서 도살)이라 부르는데, 이는 SNS·메신저·데이트앱 등으로 친분을 쌓은 뒤 사기피해자에게 여러 미끼로 송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 공소장에 적시된 돼지도살 수법은 다음 4단계이다.
단계 1 : 메신저·SNS(가짜신분 사용)서 피해자에게 접촉
단계 2 : 장기간(최대 몇 달) 대화를 통한 신뢰 형성
단계 3 : 송금 유도(고수익 투자, 긴급자금, 로멘스 스캠 등)
단계 4 : 송금 뒤 연락 단절
스캠단지로 끌려 온 많은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처우(폭력, 노동착취, 성착취, 인신매매 등) 속에서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2025년 6월 앰네스티에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스캠단지는 52개 이상이라고 한다. 참고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로서, 인권문제(고문, 표현의 자유 침해, 정치범 석방 등)에 대한 감시와 캠페인을 전개한고 있다.
스캠단지는 출입통제와 감시가 엄격하고, 그 내부에서 모든 숙식이 해결된다. 보통 잡혀 온 순간부터 빚을 생기게 되는데, 사기행각에 협조하면서 이 빚을 갚아 나가야 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강제적인 마이킹에 가깝다. 마이킹(선불금)은 유흥업소·화류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선불로 급여를 지급해 종업원을 업소에 묶어두는 관행에서 유래했다. 일본 유흥업계에서 쓰이던 마에킨(前金)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피해자들은 갇힌 공간에서 하루에 14시간 이상 전 세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업무를 하게 된다. 업무를 거부하거나 실적이 부진하면, 고문·협박·강간·인신매매를 당하게 된다. 당연히 여권·휴대전화는 빼앗긴다. 캄보디아·미얀마에 정착한 중국계 스캠조직이 처음부터 한국인을 납치타겟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중국인을 납치대상으로 했으나, 중국정부에 의해 크게 소탕된 적이 있다. 이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만인을 납치하기 시작했고, 2022년 중국·대만에서 취업알선 사기가 이슈화되자, 납치·유인 대상을 일본인·한국인을 확대하게 되었다. 우려가 하나 있다. 한국도 부동산경기 악화에 따라 비어가는 오피스·산업단지·지식산업센터 등은 많아지는 반면, 무비자로 들어오는 중국인들이 점차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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