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베네수엘라·짐바브웨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전 글 <가격과는 차원이 다른, 물가>에서는 필립 케이건(Philip Cagan)의 저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화폐 역학(The Monetary Dynamics of Hyperinflation)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의 정의가 나온다고 언급했었는데, 재화·서비스의 가격이 1달 내에 50% 이상 오를 때이다. 50% 이상의 가격상승이 지속적으로 진행될수록,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추세성으로 인해 장기화된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수 일 내에 재화·서비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통화가치와 소비자신뢰도가 급락한다. 종국에는 기업파산으로 인해 실업률 증가와 세수 감소가 일어난다. 이전 글 <모른다지만 알고 있는, 몬테네그로>에서는 전쟁지역에서 무역중단, 인프라 파괴, 투자 축소, 난민유입에 따른 재정부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흔히 발생한다고 언급했었다.
전쟁무기로 사용된, 위조지폐
영화 카운터페이터(Counterfeiters, 2007)는 1942년부터 실행된 베른하르트 작전(Operation Bernhard)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이 영국경제(파운드화 가치)를 붕괴시키기 위해 기획한 대규모 화폐위조 작전이다. 베른하르트 크루거는 작전실무를 책임졌던 나치 친위대 소속의 중령이다. 영국의 점령에 실패한 독일은 영국의 전시물자 조달과 경제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기획하였고, 이를 위해 영국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위조하여 영국경제에 투입하려 했다. 실제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작전 중에는 폭격기를 통한 공중살포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 파운드화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위조지폐를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유대인 위조기술자들이 동원되었다. 위조지폐는 영국 등으로 대량 유통되었지만, 영국이 화폐발행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방어했다.
예상과 달리 패배한, 독일
독일이 베른하르트 작전을 기획한 배경에는 20여년 전의 뼈 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면서 금본위제를 유예했고, 이는 국가의 금보유량과 무관하게 돈을 유통시키려는 의도였다. 또한 승전배상금을 기대하면서, 전쟁자금용으로 막대한 돈을 차입했다. 이렇게 191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마르크화는 평가절하되어 갔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고,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다. 프랑스가 베르사유궁을 조약장소로 선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는데,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굴욕시킨 장소였기 때문이다. 베르사유궁이 프랑스에게는 48년 만에 역사적 설욕(雪辱,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움을 씼음)을 하는 공간이었다. 프랑스는 독일의 재기불능을 원했을 것이다.
독일은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1,320억 골든마르크)이 부과되었고, 서부영토의 15%(식민지 별도)와 함께 700만 명의 인구를 잃었다. 배상금은 독일 국민총생산의 2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외화로만 갚기를 원했다. 케인즈는 베르사유 조약을 '적국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평화'라고 비판했는데, 독일이 배상금을 갚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향후 나치즘이 대두되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하이퍼인플레이션
1921년 8월 독일 중앙은행은 마르크화를 무제한으로 발행했고, 그럴수록 마르크화의 가치는 급전직하(急轉直下, 갑자기 방향을 틀어 곧장 아래로 떨어짐)했다. 전쟁배상금은 외화로만 갚을 수 있었기에, 마르크화를 아무리 많이 찍어내도 의미는 없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시작이었다.
독일이 고의로 마르크화를 망가트린 이유는 연합국으로 하여금 전쟁배상금을 요구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1922년 말 독일이 석탄·목재의 지급을 연체하자, 1923년 1월 프랑스·벨기에는 루르(독일 최대 공업단지)를 점령했다. 독일정부는 국제적 동정을 목적으로 한 소극적 저항정책(비폭력·총파업)을 선언했는데, 이미 무장이 해제된 상태라서 폭력적 저항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독일정부는 파업에 참가한 200만명 가량의 노동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마르크화를 더 발행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되었다.
1달러 60마르크(1921년)은 4.2조 마르크(1923년 말)이 되었고, 인플레이션율이 하루 20%를 넘기기도 했다. 이 정도면 지갑에 있는 지폐는 종이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겨울에는 불쏘시개로 화폐를 태웠는데, 이는 실물(나무)을 구입하는 것이 더 비쌌기 때문이다. 빈 술병이 예금잔고보다 큰 가치가 있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정부가 의도를 가지고 유도하는 정치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왠만한 현대국가는 막대한 국가부채 부담을 안고 있는데, 이 부채부담을 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플레이션이다. 2020년 COVID-19 사태 당시 미국은 수조 달러에 달하는 부양책(정부지출)과 양적완화를 시행했고, 2021년 이후 인플레이션이 급등했다. 물론 2022년 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양적완화를 중단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었지만, 2025년 트럼프는 금리인하를 통해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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