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의 정치를 이해할려면, 1970~1990년대 학생운동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군부독재가 자본의 효율적 배분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가 적지는 않았지만, 민주적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부가 증가하고 국민의식이 고양되면서, 민주화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가 커져만 갔다. 그렇게 김대중 이후 진보정당을 4차례나 집권하게 되었고, 학생운동 주역들은 정치권으로 대거 입성하게 된다.
정당은 외부정당과의 경쟁도 치열하지만, 그 내부에서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2024년 4월 총선 이전, 민주당 소속의원 상당수가 86세대(60년대생, 80년대 학번)의 운동권 출신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전국혁신회의(친이재명계 원외조직)은 중진급 인사들의 출마에 대한 우려를 표했는데, 이는 사실상 86세대의 퇴진를 요구했다. 당시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97세대(70년대생, 90년대 학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이 주도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이재명이 있었다는 말이 많았다. 당시 용퇴를 요구받은 민주당 중진은 86세대의 문재인 측근(임종석·이인영·전해철 등)이었다.
학번으로 구분하는, 운동권
1970년대 이후 학생운동은 시기별로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이전에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인물로는 김근태(65학번)이 있었다.
70년대 학번(긴급조치 세대) : 광주세대(5·18광주민주화운동)
80년대 학번(86세대)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987년 민주화항쟁)
90년대 학번(97세대)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1970년대에는 긴급조치(계엄령 하 시행된 정치적 금지·통제)에 의해 표현의 자유(집회·출판·언론 등)가 극도로 제한되었었는데, 당시 대학생들은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유신반대와 민주회복에 앞장섰다. 1980년 신군부 계엄사령부에도 크게 저항했었는데, 다음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71학번 : 강창일 원혜영 이석현
72학번 : 이해찬 정동영
76학번 : 김부겸
77학번 : 우원식 심재철
78학번 : 유시민
86세대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으로, 다음의 인물들이 해당된다.
81학번 : 우상호 송영길 윤호중 김현미 유은혜
82학번 : 김민석 박선원 이인영 강기정
83학번 : 서영교
84학번 : 최재성
85학번 : 정청래 기동민
86학번 : 임종석
80년대 민족주의, 반미
2025년 8월 현재, 1980년대 미국에 저항했던 김민석·정청래는 각각 국무총리와 당대표(더불어민주당)이 되었다. 운동권에서 활약할 당시 이 정도의 관운을 기대했는지는 모르나, 장년(長年)의 운이 좋아 보인다. 김민석은 86세대 중에서 가장 먼저 국회의원(1996년, 15대 총선)이 되었는데, 86세대가 국회에 대거 입성한 시점은 2004년(17대 총선)이었다. 정치인의 성공은 스스로의 업적·역량 보다는 경쟁자의 실책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데, 2004년 총선 당시 노무현의 탄핵 후폭풍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함에 따라 열린우리당 뉴페이스가 대거 당선된 것이다.
1985년 3월 결성된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는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산하기구로, 주요인물로는 김민석·박선원이 있다. 결성된 지 2달 만인 5월 미국문화원(을지로 입구) 점거농성을 했는데, 5.18 광주민주화운동 5주년을 맞아 광주사태 당시 미국정부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했었다. 이전 글 <공주댁 근처의 공간, 소공동>에서는 1937년 세워진 미쓰이물산 경성지점 건물이 한국전쟁 이후 미국대사관, 미국문화원, 서울시청 을지로별관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언급했었다.
1986년 결성된 반미청년회는 주사파 계열 학생운동조직으로, 주체사상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추종하는 급진조직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미정서가 강했으며, 민족자주권 쟁취를 목표로 했다. 1987년 반미청년회 내 무력부 산하에서 반미구국결사대가 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1988년 노태우 정부는 반미구국결사대 조직원을 대대적으로 검거했고, 사회주의·공산주의 단체로 지정해 집중 단속했다.
1989년 10월 반미구국결사대(서총련 산하) 대학생 6명이 미국 대사관저(중구 정동) 담을 넘어 침입한 후, 50분 동안 점거·농성하면서 노태우 매국방미 반대와 미국대사 추방을 외쳤다. 점거세력 중에 정청래가 포함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주요 반미 폭력사건 목록(미국 국무부 발표)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무기(사과탄 4개, 화염병, 사제폭발물, 쇠파이프)를 사용하여 유리창을 부수고, 접견실 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여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삼았다. 노태우 매국 방미 반대와 함께 미국대사 추방을 주장했다. 사과탄은 사과 모양과 크기(지름 7cm 가량)를 닮은 최루수류탄(KM25)으로, 1980년대 민주화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되곤 했었다.
민족노선의 배경, 주체사상
주사파(주체사상파)는 주체사상(북한 지도이념)을 지지하는 친북 성향의 학생운동조직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과 연계하면서 학생운동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주체사상이 남한에 빠르게 퍼진 배경에는 1986년 발간한 김영환(서울대 법대 82학번, 필명 강철)의 팸플릿 강철서신이 있었는데, 팸플릿(pamphlet)은 소량 제작·배포되는 작은 인쇄물이나 정보전단지이다. 주체사상·혁명이론을 쉽게 설명한 짧은 글은 학생운동권 내에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김영환은 안기부에게 검거된 이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다. 하지만 김영환은 1990년대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전향했지만, 주사파는 운동권 내 NL계열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하면서 사회운동(통일운동·노동운동 등)에까지 침투했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민주화가 자리 잡으면서, 운동권 내에서도 다양한 분파가 형성되었다.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파)는 민족모순을 사회의 근본문제로 여기면서,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내에서 민족해방·통일을 기치로 한 급진 성향의 학생운동정파(자주파)이다. 북한과의 협력(통일)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는데, 일부 NL계열은 주사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극좌 성향을 띄기도 했다. NL계열의 명맥은 한총련·한대련·통진당으로 이어졌다.
NL과 양립했던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주의파)는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목표로 한 진보적 학생운동정파로, 민족문제·통일 보다는 계급문제·민중운동에 더 집중했다. PD계열은 소련의 붕괴 이후 크게 분화되었으나, 현재는 그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현재 남아있는 PD계열 정파는 다음과 같다.
전국학생행진 : 전국학생연대회의 계승
기본소득당 : 전국학생대표자협의회 계승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 사노위·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계승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 다함께 계승
노동당 학생지부(구 진보신당)
정의당 학생위원회
NL과 PD가 학생운동 내 주류조직이었다면, 이와 별도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비합법 혁명조직도 있었다. 1989년 결성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Socialist Laborers' Alliance of South Korea, 사노맹)은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하는 조직으로, 노동정당과 사회주의 체제 수립을 목표로 했다. 1991~1992년 초반 조국이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 사노맹 산하)에서 활동했으며,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사노맹의 대표인물로는 조국 외에 백태웅·박노해·은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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