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테스코 자회사)를 61억달러에 인수했는데, KKR·칼라일과의 경쟁 끝에 거둔 국내 최대 바이아웃 거래였다. 그리고 홈플러스를 인수한 지 10년이 지난 2025년 2월, MBK는 선제적 기업회생 신청이라는 다소 생소한 결정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전 글 <점점 현실화되는 위험의 전이, PF>에서는 회생개시 결정이 나면 법원에서 지정한 법정관리인이 일방적인 선택권을 가진다고 언급했었는데, 선제적 기업회생은 기존의 경영진이 회생과정을 주도한다.
또한 2024년 MBK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가담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다소 과격한 모습을 보이며, 시장참가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뭔가 외국계 PE에게서 느껴지던 본색이 엿보이는 부분인데, 국내 소싱의 한계로 인한 야성의 노출이 아닌가 싶다. 어쨎든 굵직한 경영이벤트가 빈번히 터져 나오는 가운데, 국민들도 자본시장·금융에 관한 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기이다. 홈플러스는 PE에게 인수된 후, 지난 10년 동안 고효율·고수익을 추구하는 경영전략이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을 것이다. PE가 손해보는 장사를 할리가 없으니, 다양한 방법(저효율자산 매각, 구조조정 등)으로 원금·이자도 회수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MBK가 아닌 미국계 KKR이 인수했다면, 홈플러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뼈만 남기도 다 발렸을지도 모른다. 이는 토이저러스 사례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10여년 전 청량리 롯데백화점 내에 위치한 토이저러스를 자주 찾았는데, 한창 아이 키울 때는 그 만한 나들이 코스가 없었다. 토이저러스는 합자회사나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아시아시장에 진출했는데, 한국에서는 롯데쇼핑에서 토이저러스를 운영 중이다.
PEF에 의해 망가져 간, 토이저러스
2005년 7월 토이저러스는 다음 3개의 PE 컨소시엄으로 인수되었는데, 발표일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인수거래가 완료된 것이다. 연매출 111억 달러 규모의 토이저러스가 66억 달러에 차입매수된 것이다.
KKR
Bain Capital
Vornado Realty Trust
보르나도(Vornado)는 뉴욕에 본사를 둔 리츠(부동산투자회사) 상장사로, 1989년 스티븐 로스(Roth)가 지분을 인수한 이후 부동산개발에 집중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미국 주요 도시의 오피스와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으며, 2006년 토이저러스의 폐쇄된 매장 중 일부를 인수하는 전략을 추진했었다. 보르나도의 전신은 1936년 뉴욕 맨하탄에서 설립된 윈저핍스애비뉴(Windsor-Fifth Avenue, 인테리어디자인)이다. 1871년 윈저호텔이 맨하탄 5th Ave와 46th Street 사이에 건설되었는데, 1899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901년 설치된 윈저아케이드도 1911년 철거되었다.
PE가 인수한 이후, 전문경영인 영입을 통해 토이저러스의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이룬 오프라인 경쟁자(월마트)나 새롭게 부상하는 온라인쇼핑몰(아마존닷컴)과의 출혈경쟁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막대한 적자와 부채(50억달러 가량)를 기록하면서 파산을 선언했고, 94세의 라자러스(토이저러스 창업자)는 청산전차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숨을 거뒀다. 참고로 토이저러스의 파산은 북미·유럽에 한정되었는데, 아시아시장은 합자회사나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로 포장된 빼먹기, 차입매수
이전 글 <비밀스러웠지만 더 이상은 아닌, 사모펀드>에서는 KKR은 최초의 LBO 전문PE으로, 1989년 당시 담배·식품업체 나비스코 인수전은 당시로서는 가장 큰 LBO딜이었다고 언급했었다. 차입매수(LBO, Leverage Buy-Out)는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조달(대출)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자기자본이 투입되며 인수금융의 금융비용도 피인수기업에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PE들은 신속한 회수(속칭 빼먹기)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면서, 현금성자산은 급속도로 고갈되었다. 기본적으로 차입매수의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했으며,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경쟁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PE들에게 정기적 경영자문료와 큰 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정기적 자문료를 지급했으며, PE에서 파견된 경영진들은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아 갔다.
막대한 금융비용과 빼먹기 앞에 선 피인수회사의 운명은 뻔하게 흘러간다. PEF가 빼간 현금이 재투자로 사용하면 다할 나위 없겠지만, 추가투자(시설유지보수 등)는 커녕 무리한 원가절감(인건비·복지 등)에 돌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매장분위기는 시설노후화로 인해 톤다운되며, 진열된 장난감의 종류·숫자·퀄리티가 동시에 줄어 들었다. 원가절감을 요구받은 장난감 생산업체은 납품을 중단하거나 저품질의 장남감을 공급할 수 밖에 없다. 2017년 9월 PE들은 토이저러스를 인수한 지 13년 만에 파산보호신청(챕터11, Chapter 11 Bankruptcy Protection)을 했는데, 챕터11은 한국의 기업회생과 비슷한 제도이다.
20% 수준의 시장점유율과 11조원 가량의 매출액은 나쁜 지표는 아니었지만, 계속영업보다 현 상태 청산(자산매각)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PEF는 13년 동안 투자금의 상당부분 회수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청산 과정에서도 추가회수가 가능했다. 미국은 한국보다 수십년 전부터 사모펀드가 활성화되었고, 지금까지 PEF에 의해 망가진 소매체인기업 사례들이 많다.
비용의 공공화가 가능한, 미국
PE가 미국기업의 파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정책의 틈을 노린 것인데, 파산 과정에서 직원들이 퇴직금·연금 등이 지급받지 못하면 상당부분을 정부가 책임지게 된다. 그러니 기업오너가 계속경영으로 증가하는 퇴직금·연금에 대해 부담을 느끼면, 일단 PEF에 매각한 후 파산을 통해 퇴직금·연금 부담을 정부에 넘기는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심지어 동일한 PEF가 파산법인을 저가로 구매하면서, 비용을 공공화로 털어 버린다.
미국은 이러한 부분을 전문적으로 자문하는 로펌들도 많은데, 1909년 설립된 커크랜드앤엘리스(Kirkland & Ellis)가 대표적이다. 2023년 기준 연간 72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세계 최대의 로펌 중 하나로, 기업 관련 법률(기업법·지적재산권·구조조정 등)에서 전문성을 보이고 있다.
2025년 홈플러스가 처한 상황은 8년 전에 토이저러스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유통업계 2위인 홈플러스는 서서히 무너질 것이며, 직원들은 직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청산 과정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로펌 뿐이다. 다만 홈플러스 직원들도 간과한 것이 있다.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영업장 내에서 노조(직원)의 정치적 제스처가 있었는데, 이는 최대주주인 PEF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판단착오이다.
PEF는 돈을 굴리는 금융기업일 뿐, 노조의 눈치를 보는 재벌기업이 아니다. 기업의 미래나 직원의 안녕은 애초에 PE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KRR이 아닌 MBK라는 점인데, 국내 PE로서 여론을 아주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국내PE들도 점차 문 앞의 야만인처럼 변해가는 기분이다.
'부동산·금융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견제가 강화되고 있는, JB (0) | 2025.03.28 |
---|---|
혼란만 가중시킨, 토지거래허가 (1) | 2025.03.20 |
역사를 써나가는, MG손보 (0) | 2025.03.15 |
남부순환선의 부활, 위례과천선 (0) | 2025.03.07 |
월세시장을 구축하려는, 외국계 (1) | 2025.0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