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꾸준히 얘기해 왔듯이, 향후 5년 이상은 아파트(특히 서울·수도권) 신축공급을 커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년 동안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시공사의 절반 이상이 기업회생·파산 과정에 처했다는 사실은 공급부족의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데, 과연 앞으로 주택·오피스텔은 누가 지을지. 정부가 주택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채택하는 부동산 정책은 어느 정도 바닥을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왠만한 수요·공급 대책을 다 꺼내 든 탓에, 이후의 정부들은 고민없이 카피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도 역대 정부들처럼 그린벨트에서 공급방안을 찾으려 하고 있는데,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40~50대는 지난 20년 동안 정부가 쏟아낸 반복되는 부동산대책의 결과를 세세히 지켜본 세대로, 아파트시장에 있어서는 왠만한 전문가와 어깨를 견 줄 정도로 스마트한 시장참여자들이다. 2025년 2월 서울시는 일부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갭투자 차단)구역에서 해제하면서 주택가격의 변동성을 키웠는데, 다분히 오세훈(서울시장)의 개인정치의 연장이라고 보여진다. 2024년 12월 윤석열의 계엄 이후, 오세훈은 조기대선 출마의지를 보이며 보수표 결집을 위한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특히 서울 토지거래허가제를 해지할 늬앙스를 간간히 흘러 나왓는데, 실제 2025년 들어 잠실에서는 토지거래허가제의 해지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였고 아파트 거래량도 단기적으로 증가했었다. 다만 해제시점만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부동산정책을 긁어 부스럼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잦은 시행·해제가 시장참여자(개인투자자)들에게 부담·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토지거래허가제를 해제한 지 1달이 지난 3월, 서울시는 이전의 규제구역을 포함한 확장지역(서초구·강남구·송파구·용산구)에 토지거래허가제를 다시 지정했다.
서킷브레이크, 부동산 버전
서울시·국토부가 정교한 규제지역 선별 없이 급하게 지정한 것으로 보아, 일단 러프하게 셧다운하여 시간을 벌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보통 1년 단위로 지정하지만, 이번에는 구 단위로 6개월을 지정했다. 아마도 6개월 뒤에는 좀 더 정교한 핀셋지정이 있을 것을 보인다. 뚜껑을 열자마자 얼른 덮는 오세훈의 당황한 모습에서 지난 4~5년 간의 억눌려 있던 투자수요(상승모멘텀)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서킷브레이크(주식시장)·사이드카(선물시장)을 보는 듯했다.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는 주식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주가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할 경우 일시적으로 모든 주식거래를 중단시킨다.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1998년 한국에도 도입되었다. 한국은 코스피지수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단계를 나누고 있다.
1단계(전일 대비 8% 하락) : 20분간 거래 중단(이후 10분 간 단일가 매매)
2단계(15% 하락) : 20분간 거래 중단(이후 10분 간 단일가 매매)
3단계(20% 하락) : 당일거래 전부 중단
극상급지를 만들어 낸, 규제
토지거래허가제에 묶여서 가격이 주춤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압구정은 토지거래허가제에 묶인 상태에서도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었는데, 이는 극상급지라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현금이 많은 부유층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제에서 제외되었던 반포가 나홀로 가격상승한 것은 풍선효과라는 상식적인 논리였는데, 결과적으로 반포도 극상급지의 영역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2월 다음 지역(동 단위)로 묶은 토지거래허가제를 해제했는데, 이른바 잠삼대청이다.
잠실동 : 아시아선수촌, 우성 1~4차
삼성동 : 진흥
대치동 : 은마, 우선미, 대치 우쌍쌍
청담동 : 청담현대1차
실거주 의무가 있는 토지거래허가제는 사유재산권을 다소 침해하는데, 투자 목적을 배제한 거주 목적으로만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의 잉여자본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원천봉쇄한다. 토지거래허가지역에서 해제되면 실거주의무가 없어지면 갭투자 활성화로 인해 가격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 아마 신속하게 토지거래허가제를 재지정하지 않았다면, 금번에 해제된 아파트 가격은 극상급지(압구정·반포) 턱 밑까지 쫒아갔을 것이다.
가격이 주춤해 있던 상급지가 토지거래허가제에서 해제되면, 그 주변지역의 매수세가 상급지로 흡수되면서 가격상승으로 가격격차를 벌릴 수 있다. 서울시가 극상급지(압반)보다 등급이 낮은 상급지(잠삼대청)의 토지거리허가제를 해제하면서, 해제지역의 거래량 증가와 가격상승을 안일하게 바라본 듯하다. 규제가 풀리는 순간, 규제에 가려져 있던 수익구간은 퀀텀점프(양자도약)하듯이 호가회복이 나타나면서, 일생일대의 투자를 해야하는 중산층에게는 마지막 기회라는 설레임을 안겨준다.
갭투자의 성지, 잠실
토지거래허가에서 풀린 잠실에서 아파트 가격 급등이 나타난 이유가 상대적 매매가격 수준과 전세가율이다. 잠실의 매매가격은 상급지(압반삼대청)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대규모 준신축물량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전세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잠실은 갭투자에 최적화된 투자성지와도 같다. 지방투자자들은 다시 오지 않을 서울진출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전국 단위의 투자집중화가 나타난 것이다.규제지역 내의 아파트 소유자는 국내 아파트시장에서 가장 스마트한 투자자일 것이며, 언젠가는 걷힐 시점을 기다릴 것이다. 버티면 제값에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거래는 없게 된다.
규제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가격모멘텀은 더 크게 응축되어 갈 것이며, 전국의 투자자들이 토지거래허가제 구역만 바라보면서 투자대기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향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오세훈은 1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국의 투자자들에게 정답지를 유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울(특히 강남3구)과 지방 아파트 간의 양극화도 점차 심화되어 갈 것이다. 이제는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가 마치 프리미엄을 지닌 라이센스처럼 여겨진다.
COVID-19 팬데믹 이후부터 백화점 명품브랜드는 오픈런·예약제(줄세우기)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허들은 윈도우 밖에서 대기 중인 중산층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부자들은 언제든 구매하고 싶을 때, 가방·시계·귀금속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부동산백화점은 말 한마디로 명품부동산관을 만들었으며, 전국의 투자자들은 다시 오픈런을 위해 줄을 늘려나가고 있다.
1990년대생(현 20~30대)가 서울아파트를 영끌구매하는 것을 사회적 폐해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사실 원리금지불능력만 있다면 가장 영 앤드 스마트(young and smart)한 투자이다. 10년 지나보면 알게 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적령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주택시장이 호황일 가능성이 높은데, 1990년대생은 마지막 베이비붐이다. 향후 더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가 없다는 사실을 아파트가격의 하락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서울아파트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가격을 계속 올라 갈 것이다. 다만 부동산시장의 손바뀜이 적어지는 고착화가 나타날 것이며, 추세적 변화에서 정책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
해제지역의 가격상승은 단기적으로 상대적 상급지의 가격하방을 받쳐주면서, 장기적으로는 상대적 하급지의 가격을 견인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인하기의 초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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