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은 어느 국가에서나 있게 마련인데, 한국과 중국에서도 치열하게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2002년부터 중국정부는 동북변강역사여현상시리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研究工程, 일명 동북공정)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동북 변방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일련의 연구 과제이다. 현재 중국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국가 주도의 논리가 핵심인데, 그 과정에서 한국 고대사(고조선·고구려·발해 등)가 중국역사의 일부(변방 소수민족 정권)로 왜곡되었다. 동북3성(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의 역사적 소유권을 확고히 하여 조선족의 이탈을 막고,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북한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한나라 역사는 상당히 익숙하지만, 동시대 고조선(古朝鮮)은 왠지 전설로 느껴진다. 한나라는 진(秦) 이후 중국을 통일한 왕조로, BC 202년 유방(한 고조)이 항우(초)와의 초한지 전쟁에서 승리하고 황제에 올랐다. 왕망이 세운 신(新)을 기점으로 전한(서한)과 후한(동한)으로 구분되는데, AD 220년 헌제(후한 마지막 황제)가 위나라 조비(조조 아들)에게 선위하면서 한나라는 폐국했다. 이후 시작된 것이 삼국시대이다.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이 BC 2333년 건국되었다고 하지만, 국가의 기틀이 완성된 시기는 훨씬 이후(BC 7~4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BC 108년 무제(한나라)의 침공으로 1년 간 전쟁을 치른 끝에, 지배층의 내분으로 왕검성이 함락되면서 고조선은 멸망했다. 초기 왕검성은 현재의 요령성(랴오닝성) 일대에 있었으나, BC 3~2세기경 한나라의 압박으로 인해 대동강(평양) 일대로 이동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요령성(랴오닝성)을 관통하는 요하(遼河, 랴오허강)는 발해만으로 흘러드는데, 요하(요수)를 기준으로 요서(遼西)·요동(遼東)이 구분된다. 왕검성 위치가 현재의 북경(베이징) 부근이었다고 주장하는 재야사학계의 시각도 있는데, 고조선의 영역을 대륙의 깊숙한 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이 의견에 따르면 요동이 요하의 서쪽(하북성 일대)이라고 봐야 한다.
고조선과 중국(진·한)의 경계는 시기별로 변했지만, 대체로 요하 내지 난하(하북성)를 중심으로 공방이 있어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재야사학계에서는 태행산맥(太行山脈, 산서성·하북성 경계)이 고조선·한의 국경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고대문헌에 등장하는 지명(요하·갈석산·패수 등)의 위치를 현재의 국경보다 훨씬 서쪽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영토로 보기에는 태행산맥까지의 지역에서 발견된 고조선의 흔적(비파형 동검, 탁자식 고인돌 등)이 없다는 점이 한계이다. 주류역사학계에서는 고대의 발해를 바다(현 발해만)으로 바라보지만, 재야사학계에서는 산동반도와 하남성 사이에 존재했던 거대한 호수(내지 저습지)로 본다. 산동성 일대의 고대 문화를 고조선의 영향력과 연결하는데 있어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왠지 재야사학계는 동북공정에 맞서는 느낌이 드는데, 민족주의적 역사해석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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