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역사는 불교의 시간관(겁)에 비하면 찰나(刹那)에 불과하며, 우주도 현겁의 가장 최근일 뿐이다. 부처는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 시대의 외형을 잠시 빌려 쓴다. 부처의 겉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며, 껍데기 뒤에 있는 우주의 진리와 자비(법신)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몸을 3가지로 나눠 설명하는데, 이를 삼신불(三身佛)이라 한다.
법신(法身) : 진리 그 자체(비로자나불=대일여래)
보신(報身) : 수행의 보답으로 완성된 고차원의 영체(아미타불·약사여래·아촉불)
화신(化身) : 인간의 눈에 보이는 부처의 외형(석가모니불)
법신은 부처의 본체로, 형체·시작·끝이 없이 영원히 상주하는 우주법칙 그 자체이다. 즉 진정한 부처는 진화의 시간이나 외형적 변화를 초월한다. 보신은 높은 정신적 경지의 보살에게 보이는 지혜·자비의 영체로,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보살(菩薩)이 수행 단계에 있는 존재라면, 보신은 겁의 시간 동안 세웠던 거대한 서원·수행을 완벽하게 성취한 부처이다. 서원(誓願, 맹세와 다짐)은 스스로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우주 전체의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제하겠다고 맹세하고, 그 목표를 향해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는 서약으로, 개인의 단순한 소원·기도와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보살이 각자의 서원을 완성할 때마다 새로운 보신이 탄생하고, 이를 성불(成佛)이라 표현하다. 보신은 법신과 하나가 되며, 무한한 지혜의 빛과 완전한 정신적 영체로 존재한다. 우주를 초월한 보신은 고유의 정토(淨土)에서 중생구제를 위한 법을 설하는데, 이 또한 형체를 상상하는 것은 의미없다.
화신은 법신·보신이 그 시대 환경에 맞춰 변화하여 나툰 물리적 몸이다. 지구의 화신은 인간의 모습이겠지만, 다른 행성에서는 외계인일 수도 있다. <나투다>는 주로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부처·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에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토다(나타나다 옛말)에서 유래했다. 부처는 시대·행성, 그리고 생명체의 진화단계와 문화적 수준에 맞춰서 나투하는데, 이는 구제대상이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아주 먼 과거에 수행을 통해 보신불이 되었고, BC 5세기 경 인도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외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데, 금강경(제5장)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외형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바로 여래(부처)를 보리라
사바(娑婆, 인내해야 하는 세상)는 산스크리트어 사하(Sahā, 참고 견디다)를 한역한 말로, 불교에서 인간이 사는 지구를 말한다. 수많은 고통·괴로움이 가득 차 있어서 오직 참고 견뎌야만 살 수 있는 감인세계(堪忍世界)이다. 불교에서는 사바는 고통스러운 공간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빠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행터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의 인생에서 누구나 보살이며, 끊임없이 참고 견디며 수행해야 죽음에 앞서 작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이것이 현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다. 특히 40~50대 직장인들에게 회사가 사바이며, 남들 보다 조금 더 참고 견디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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