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가 현장검증과 감정을 동시에 신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인용 여부는 향후 재판의 방향을 읽어 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일단 판사가 직접 현장에 검증하러 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판사가 원고의 준비서면에서 법리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후, 원고에게 증거확보의 기회를 주려는 마음이 있다면 감정신청은 인용될 것이다. 판사가 원고의 준비서면을 정독하지 않았다면, 현장검증·감정 신청의 결과가 동일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장검증은 기각됨과 동시에 감정을 인용한 것은 원고의 준비서면을 유심히 봤다는 반증일 수 있다.
판사는 공학적 결함(설계·정비·관리 측면)이나 의학적 인과관계(기왕증·노동능력상실률) 등을 판단한 고도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감정인(법원이 지정한 전문가)의 계량화된 보고서를 바탕으로 판결의 기초(과실비율·손해배상액)를 삼는다. 판사는 감정결과에 기반하여 판단을 하며, 판결 전에 조정(합의)을 유도할 수도 있다. 물론 감정 없이 적당한 선에서 조정을 유도하려는 판사도 있는데, 이 경우 당사자들은 불만을 가진 채로 찜찜함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 의료감정을 통해 피해사실(손해 규모)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다면, 피고의 과실과 사고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감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인과관계는 구체적인 숫자(과실비율)로 표시된다.
피고는 사고원인을 원고의 문제(부주의·체질 등)으로 돌리려 할 것이기에, 원고의 입증전략을 치밀해야 한다. 원고가 증거를 확실히 확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감정이며, 판사가 감정을 인용했다는 것은 피고의 주장을 무조건 믿지는 않겠다는 의미이다. 실제 감정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도 빈번한데, 보통은 원고가 하자에 대한 구체적 정보 없이 허황된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이다. 법원은 증거를 찾아주는 기관이 아니기에, 원고는 감정인용을 끌어내기 전에 충분한 소명이 필요하다. 원고는 감정신청에 앞서 재판부의 심증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이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킬 만한 사진이나 실측자료를 최대한 준비서면에 담아내야 한다. 원고의 주장에 무게를 둔 판사는 감정을 인용할 거이며, 이는 시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피고의 주장만 신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감정인용 이후 감정인 선정과 감정사항(질문지)이 중요하다. 법원 감정인은 아무나 지정되는 것이 아니며, 매년 각 고등법원에서는 엄격한 자격심사를 통해 전문감정인 명단(공인기관·학회·교수·기술사 등)을 지정한다. 피고는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결과를 가져다 줄 감정인을 지정하고 싶겠지만, 법원은 공정성(무작위·순번)은 충분히 보장한다. 판사는 당사자들에게 감정인을 추천하거나 의견을 내라고 하며, 이 때 당사자는 의견서(내지 감정인지정신청서)를 제출한다. 안전·인권을 중시하는 기관이 아무래도 원고의 피해를 더 잘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
원고는 질문지를 통해 감정인의 감정방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피고는 정기적 안전검사를 통과했다는 점을 강력한 방어논리로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소송실무에서는 정기안전검사를 통과했더라도, 감정을 통해 설치·관리상의 하자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정기점검업체들은 메뉴얼에 따른 체크리스트 통과 여부만 신속히 확인하는 경향이 있고, 관리주체와의 향후 재계약도 염두해야 한다. 즉 형식적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경향이 크다. 대법원도 정기검사(행안부) 통과는 최소한의 행정적 기준을 충족했다는 의미일 뿐이며, 소송에서 피고의 면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행정적 기준을 충족했더라도, 이용자의 인체구조나 동선상 안정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실질적 위험성이 있다면 민법상 공작물 책임(하자)가 인정될 수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먼저 질문을 던져 기준을 선점하는 쪽이 유리한 편이다. 원고측의 질문이 먼저 채택되면, 피고 측은 원고의 질문 프레임에 갇혀 방어적인 답변을 준비할 수 밖에 없다. 원고는 감정질의서를 통해 감정인의 시선을 하자 부위에만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즉 시설 전체가 안전한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불리한 답변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시설의 위험성을 부각할 수 있는 유도질문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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