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후기 조정에는 권력을 장악한 8개의 귀족집단이 있었는데, 이를 대성팔족(大姓八族)이라 한다. 백제는 고구려·신라와 달리 왕권(부여씨)가 귀족세력을 완벽하게 통합하지 못했기에, 유력귀족이 왕실과 협력·대립하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정치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다. 백제 귀족의 이미지는 인공호수를 가진 정원, 바둑문화, 고급향로에서 피어 오르는 수입향, 그리고 불교·도교를 들 수 있다. 특히 정계를 은퇴한 후에는 세속의 권력투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인생의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불교(정토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통전에서 대성팔족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는데, 801년 편찬된 통전(通典)은 두우(당나라)가 편찬한 중국 최초의 제도사 전문역사서(정치·제도 백과사전)이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실제 유력가문을 다음 7개를 보기도 한다.
사씨(沙氏)
연씨(燕氏)
해씨(解氏)
진씨(眞氏)
국씨(國氏)
백씨(苩氏)
목씨(木氏)
사씨는 사택시(沙宅氏)와 같은 가문으로, 사로(沙老, 성왕대 좌평), 사택지적(의자왕대 마지막 대좌평) 등이 있다. 1948년 관북리(충남 부여읍)에서 사택지적비(沙宅智積碑)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택지적이 사비성 인근에 세운 금석문이다. 연씨는 연실(燕實, 성왕대 병관좌평), 연문진(燕文進, 무왕대 좌평) 등이 있다. 백제 전반기 해씨(부여계)·진씨는 왕비족으로서 권세를 누렸는데, 해두(解頭, 아신왕 좌평), 해구(解仇, 전지왕대), 진정(眞淨, 근초고왕대 조정좌평), 진무(眞武, 아신왕대 병관좌평) 등이 있다.
국씨·백씨는 백제 중·후기(사비성 시기)에 부상한 가문으로, 국지모(國智牟, 무왕대 좌평), 국변성(國辨成, 의자왕대), 백가(苩加, 무왕대 좌평), 백기(苩奇) 등이 있다. 목씨는 원래 목협씨(木劦氏)·목리씨(木刕氏)이었으나, 단성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 475년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한 후, 목협만치(목만치)가 웅진으로의 천도를 주도했다. 목라근자(목만치 부)는 가야(임나) 7국을 평정하고 남방영토를 개척했던 장군이었는데, 그 공로로 하다호리를 가문의 식읍(食邑, 영지)으로 하사받았다. 하다호리(下哆呼唎, 남쪽의 큰 고을)는 가야를 평정한 가문의 사유지를 의미했으며, 오늘날 웅진(현 공주)이다. 즉 한성이 함락되자, 목만치는 수도를 가문의 식읍으로 이전한 것이다. 실제로 웅진에서 문주왕을 내세운 목만치는 조정을 독점하게 되었고, 한성 기반의 해씨·진씨는 타격을 입었다. 소가씨(蘇我氏, 고대일본 최고 권력가문)이 목협씨(목씨)에서 유래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7개 성씨 외에도 협씨·정씨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협씨(劦氏)는 목협씨(木劦氏)를 2개의 성으로 나눠 적으면서 나온 오류라고 하며, 정씨(貞氏)는 진씨(眞氏)의 오기로 판명되었다. 백제 멸망 후에 귀족가문은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신라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졌다. 부여융(의자왕 아들)이 당나라로 끌려간 후, 당나라 고종에게 서(徐)씨를 하사 받았다. 이후 후손이 한반도로 돌아와서 부여서씨(徐氏) 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부여씨를 여씨(餘氏)로 줄여 부르기도 했는데, 고려시대 여씨 일부가 귀화하여 의령여씨(余氏)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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