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성남시가 발족할 당시 분할된 행정구역은 다음 3개였다.
탄리 : 태평동·신흥동 일대
단대리 : 단대동·중앙동 일대
하대원리 : 하대원동·성남동 일대
탄리(숯골)에서는 한성에 공급할 숯을 생산하였는데, 마을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숯물이 서쪽에서 흐르는 냇가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숯물로 인해 검게 물든 냇가를 탄천(숯내·검내)이라 부른 것이다. 조선시대 숯은 매우 귀한 자원으로, 세종대 이후 장식(종8품)이 숯을 직접 관리·감독했다. 당시 궁궐에서 사용한 숯의 주된 용도는 한약제조·음식조리·다림질이었는데, 궁중문화를 즐겨 따라하던 부유한 양반들도 자연스레 숯을 찾게 되면서 숯의 수요는 점차 증가하였다.
탄천의 유래는 여러 설이 전해지는데, 백제시대 설이 가장 오랜 것이다. 온조가 하북위례성에서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한 후, 탄천 일대를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군사들에게 배식을 하기 위해 많은 장작을 떼웠고, 이 때 나온 숯들은 식용으로 사용할 냇물의 정화를 위해 냇물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이렇듯 숯들이 내를 가득채워 <숯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탄천을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전국에서 모인 10만명 이상의 대군으로 군사훈련 중의 하나인 대열(大閱)을 실시했다고 한다.
탄천의 유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픽션은 바로 <삼천갑자 동방삭>인데, 삼천갑자는 180,000년(1갑자=60년)이다. 어느 날 옥황상제로부터 동방삭을 잡아오라는 명을 받은 저승사자는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는데, 검은 물빛을 이상하게 여긴 한 사내가 저승사자에게 숯을 물에 씻는 연유를 물었다. 이에 저승사자는 숯을 희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태연하게 답하자, 그 사내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 스스로가 동박삼임을 드러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이렇게 우둔한 자는 처음이다.
사람은 항상 신중함을 몸에 베게 하려 노력해야 하고, 말 또한 쉽게 뱉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 삼년갑자를 피해다닌 동박삭은 어느 순간부터 경계심이 풀렸을 것이고, 낯선이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내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오랏줄(붉은 포승줄)로 묶은 채로 옥황상제 앞으로 끌고 갔는데, 동방삭의 혐의는 저승명부에 적힌 자연수명 60년을 몰래 삼천갑자로 조작한 것이었다. 저승사자가 숯을 씻던 냇물을 <숯내>라고 불렀다. 동방삭(중국 전한 무제대 관료)는 당시로서는 장수했다고 말할 수 있는 1갑자(60년)을 살았다고 한다. 무제는 익살·재치가 넘치는 동방삭을 평생 옆에 두었지만, 한낱 광대로 여기면서 높여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동방삭은 출사를 속세를 피하는 수단으로 여겼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그런 태도가 신선세계와 쉽게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탄천의 저승사자 스토리와 유사한 모티브의 동양설화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마고할미>이다. 어느 산 깊은 계곡 반석 위에 한 노파가 쇠절구공이를 바닥에 문질러 갈고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사람이 지나가던 사내 하나가 노파에게 쇠절구공이를 가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노파는 쇠바늘이 필요해서 갈고 있다고 답하자, 그 사내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스스로가 동방삭임을 드려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쇠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소리는 처음이다
그 순간 노파는 억센 손으로 동방삭을 잡았는데, 그 노파는 서왕모의 명으로 동방삭을 잡으러 온 마고할미였다고 한다. 마고(麻姑)는 직역하면 삼베여인으로, 대체로 나이가 많은 여인으로 표현되면서 뒤에 할미가 붙게 된다. 마고는 한국·중국·일본의 시조로 인식되며, 그에 인해 산파 내지 어머니의 상징이 되었다. 삼베가 옷의 재료로 사용되던 오랜 시간 동안, 여인들은 매일같이 베틀에 앉아 옷감짜는 일을 하던 직녀이자 어머니이자 마고였다.
동방삭의 장수비결, 천도복숭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인문지리서 <산해경>에 따르면, 중국 서쪽끝 곤륜산 옥산(玉山)의 한 봉오리에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여신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곤륜산은 황하강의 발원지로 중국인들에게 성지로 여겨진다. 서왕모의 시중을 드는 3마리의 청조(파랑새)는 음식을 제공하였고, 삼족오는 잔심부름을 하였다고 한다. 곤륜산에는 서왕모가 관리하는 불사의 열매인 반도(천도복숭아)가 열리는 반도원가 있었는데, 오리알 만한 크기의 푸른색 반도 1개를 먹으면 1만8천년을 살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반도를 영생의 상징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명나라 소설 <서유기>에서 묘사된 반도원은 다음과 같다.
반도원에는 총 3,600그루의 복숭아나무를 3구역에 각각 1,200그루씩 심어져 있었다. 3,000년에 한번 열리는 입구쪽의 작은 반도를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었고, 6,000년에 한번 열리는 중앙쪽의 달콤한 반도를 먹으면 불로장생이 가능했다. 그리고 9,000년에 한번 열리는 안쪽의 자주빛 반점을 가진 반도를 먹으면 태양과 달만큼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무제가 장생비법을 얻고자 신선에게 제사를 올리자, 칠월칠석 밤에 서왕모는 신선들을 거느리고 구름과 함께 9가지 빛깔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찾아왔다고 한다. 무제의 극진한 대접에 기분이 좋아진 서왕모는 반도 7개를 꺼내어 3개를 먹은 후, 남은 4개를 무제에게 주었다. 무제는 몰래 복숭아씨를 몰래 숨기려 했으나, 이를 눈치챈 서왕모는 "선계의 물건인 반도를 지상에서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역사인물 동방삭이 신선세계와 결부되어 등장한다. 서왕모는 무제의 일행 중에서 있던 동방삭을 발견한 후, 동방삭이 자신의 반도를 3번이나 훔쳐 먹었던 것을 나무랬다. 사실 동방삭은 신선이었는데, 인간세계로 쫓겨나 무제의 신하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세계에서 4개의 반도를 먹은 인간 무제는 70세에 죽었는데, 천상세계에서 반도를 훔쳐먹은 신선 동방삭은 삼천갑자(18만년)를 살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오래 살려고 발버둥 쳐봐야 주어진 생을 살다가 죽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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