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9월 김홍륙(러시아공사관 통역관)이 고종을 독살하려한 사건이 있었다. 김종화(궁궐 창고지기)가 공홍식(전선사 주사 출신)의 지시로 커피주전자에 대량의 아편을 넣었는데, 대가는 은전 1,000원이었다. 구한말 전선사(典膳司)는 궁중음식·수라·잔치 및 관련 두구를 보관·관리하던 궁내부 소속관청이었는데, 선(膳, 수라) 자가 들어 있다. 고종과 황태자(순종)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맛에 익숙한 고종은 이상한 맛에 반사적으로 구토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실신 후, 몸에 중독증상으로 의심되는 이상현상(혈변·치아상실 등)을 겪었다. 김홍륙은 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을 잃은 후에 유배형(흑산도, 공금횡령 혐의)에 처해졌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을 독살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대명률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단순한 원한사건이었던 커피독살 기도사건은 조선사회에 엉뚱한 영향을 주게 되는데, 수구파가 신진개화파를 몰아낼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수구파들은 서양음식에 대한 경계를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수구·개화의 대결은 격화되었다. 서양음식이 죄는 아니라는 것을 고종도 잘 았았는지, 이후에도 고종은 계속 커피를 즐겼다.
1895년 고종이 손탁(러시아공사관 처형)에게 정동의 한 한옥건물을 하사했다. 손탁은 이 한옥건물을 서구풍으로 꾸민 후, 외교관들의 사교장과 손탁빈관(개인 숙박업소) 형태로 운영했다. 1895년 전후로 친미·개화파는 외교관들과 정동 일대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는데, 이 외교적 사교모임을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라 했다. 이전 글 <생각보다 오래된 습관, 식후 커피>에서 손탁에 대해서 잠시 언급한 바 있다.

1902년 대한제국은 내탕금(황실비자금)으로 손탁에게 하사한 한옥건물을 철거한 후, 2층 규모의 서양식 호텔(손탁호텔)을 신축했다. 외관은 손탁이 위탁운영하는 사설호텔이었지만, 사실상 대한제국 황실의 영빈관 기능을 했다. 호텔의 2층은 국빈전용 객실로 사용되었고, 1층에는 일반 외국인 객실과 식당이 있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쿠도 히나(김민정 분)가 운영하는 글로리호텔이 손탁호텔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며, 손탁호텔에 머물렀던 유명인으로는 윈스턴 처칠(러일전쟁 당시 종군기자)이 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러시아 세력과 대한제국 황실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손탁호텔도 일본 정치인들의 압박공간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1909년 손탁은 호텔경영권을 보에르(프랑스)에게 매각했다. 1917년 이화학당(현 이화여고)이 기숙사(프라이홀) 신축용으로 손탁호텔 부지를 매입하면서 철거되었다. 흔히 손탁호텔 1층의 커피숍이 서울 최초의 카페로 알려 있지만, 사실 외교관·특권층의 휴식·연회공간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최초의 카페는 1909년 오픈한 남대문역(현 서울역)의 기사텐(喫茶店)으로 알려져 있으며, 1920년대 와서야 한국인이 오픈한 최초의 다방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로 커피서비스를 제공한 공간은 1885년경 호리 리키타로(미군함 요리사 출신)가 오픈한 대불호텔(인천)로 알려져 있으며, 독립된 카페는 아니었다. 당시 인천항에서 경성까지 가는 시간이 12시간 이상 소요되었기에, 외국인들은 인천에서 숙박하는 경우가 많았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인천 숙박수요가 줄면서 대불호텔은 폐업했고, 이후 중화루(중국요리집)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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