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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공기처럼 소중한, 화장실

by Spacewizard 202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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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용변과 관련하여, 크게 당황한 개인적 사건 2개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날, 포천 오피스텔 공사현장에서 갑작스런 용변신호가 왔었다. 즉시 준공을 앞둔 건물 실내로 뛰어 갔지만, 막 설치된 양변기 속에는 물이 없었다. 워낙 급해 '그냥 마른 변기에 일을 치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으면서 야외공터에 위치한 간이화장실로 뛰어 갔다. 설치된 지 2년이 지난 간이화장실의 광경은 처참하기 그저 없었는데, 살면서 볼 수 있는 최악의 비주얼이었다. 심지어 발바닥 닿을 곳을 찾지 못해 뒤꿈치를 들려고 노력했던 기억과 최대한 빠른 시간에 용변을 끝내야 한다는 본능적 긴박감이 감돌았다. 집에서 따뜻한 패드에 엉덩이를 붙이고, 10분 이상 앉아 있던 순간들이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또 한 번은 제주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륙과 동시에 극심한 용변신호가 온 적이 있었는데, 탑승 직전에 들이켰던 한 컵의 콜라가 문제였다. 근데 하필 난기류가 심했고, 착륙 때까지 비행기 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괄약근을 통제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찌해야 할지라는 고민과 함께, 상공에서의 1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었다. 쾌적한 화장실은 공기와도 같아서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조선시대 화장실은 <뒷간·측간>라 불렀는데, 악취를 피하기 위해 집 밖(내지 북측 뒤편) 구석진 곳에 세웠다.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정랑(淨廊, 정이) 내지 해우소>라 불렀는데, 정(淨, 깨끗할)을 사용하면서 번뇌를 비우는 장소를 상징했다.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공간)는 한국전쟁 이후 경봉스님(통도사 극락암)이 화장실에 팻말로 걸면서 널리 알려졌다. 전근대의 화장실은 땅에 구덩이를 판 후, 그 위에 놓인 나무판자에 양발을 놓고 쪼그려 앉아 용변을 봤다. 양반가의 측간은 창문(환기)·지붕(폐쇄)·돌바닥(견고) 등을 갖추고, 간혹 겨울에는 난방을 위해 화로를 놓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민들의 측간은 벽체·지붕가 허술하여, 자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 특히 한겨울에 용변보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인데, 잠시나마 조선시대 조상들의 용변보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2000년 임진강에서 치른 1주일 간의 혹한기 훈련을 치렀는데, 영하 20도 안팎의 기온에서 바지를 내리는 그 느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시원함이었다. 용변 볼 자리를 삽으로 판 후에, 쪼그려 앉은 엉덩이를 스쳐가는 차디찬 임진강 강바람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북녁에서 들려오는 야간 대남방송은 긴장감을 더해줬고, 용변을 끝낸 후에는 어설프게 매립된 똥지뢰들을 피하는 것도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1980년대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댁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대낮에도 어두웠던 공간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외가집은 양옥과 기와집으로 구성되었는데, 기와집에 붙은 뒷간이 대낮에는 그나마 밝아서 무서움이 덜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전 글 <맨션과 함께 화려했던, 빌라>에서 어릴 적 양옥집의 불편한 점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2층 외부에 위치했던 화장실에서 본 용변이 1층까지 떨어지는 소리가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자칫 빠지면 수 미터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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