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국민학교 5학년 시절 생각나는 기억으로는 마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낙동강변까지 소풍을 간 것과 합성동 영화관에서 개 같은 내 인생(1985년작)을 단체관람한 것이다. 이 영화는 국내개봉이 1987년 이었으나, 당시 단체관람용으로 극장개봉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당시에는 학교 차원에서 영화를 단체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제목이 상당히 비속적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영화가 시작되자 동심 어린 눈을 떼지 못했다. 라세 할스트롬(스웨덴)은 휴머니즘을 잘 살리는 감독으로, 길버트 그레이프(1993년)로 할리우드에 진출했었다.
어린 잉마르는 병(폐질환)에 걸린 엄마와 형과 함께 살고 있다. 말썽꾸러기 잉마르는 아픈 엄마에게 늘 혼나면서도, 엄마의 병이 자신이 탓이 아닌지를 늘 고민한다. 어느 날 잉마르는 외삼촌이 있는 시골마을(스몰란드)로 보내지면서, 자신의 위안이었던 애견(시칸)과도 헤어진다. 잉마르가 스스로를 위안하는 장면에서 한 번 놀라게 되는데, 러시아 우주선에 태워져 먼 우주로 보내진 개(라이카) 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라이카는 아무런 선택권 없이 우주로 보내져 굶어 죽어야 했다. 그리고 따뜻한 이웃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잉마르는 활력과 웃음을 되찾지만, 여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잉마르는 병세가 악화된 엄마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잉마르와 형은 도시의 친척 집으로 보내졌지만, 잉마르는 엄마를 잃은 슬픔·충격으로 흉내장난·돌출행동을 일삼다가 쫒겨난다. 결국 다시 스몰란드로 돌아온다. 선머슴 스타일의 사가는 잉마르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지만, 다른 여자아이가 잉마르에게 관심을 보이자 질투에 휩싸여 잉마르와 심한 말다툼을 한다. 사가와 잉마르가 건초더미 위에 만든 임시 링 위에서 권투 스파링을 하는 장면이 인상깊게 남아 있는데, 사가의 한 마디가 잉마르를 무너 트렸다. 보호소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칸이 안락사 당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잉마르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개처럼 기어 다니면서 짖어댔고, 마당의 작은 창고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이듬 해 봄 잉마르는 창고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잉마르와 사가는 소파에 나란히 누워 잉게마르 요한손(스웨덴 권투영웅)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 라디오 중계를 함께 듣는다. 라디오에서 스웨덴 선수의 승리가 선언되자, 온 마을사람들과 함께 환호하던 두 아이는 잠이 든다. 잉마르는 삶의 비극을 유쾌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길버트 그레이프와 설정의 유사하다. 주인공이 온전치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 정서적 부채·책임감을 짊어지고 있고, 고립된 작은 시골마을에 갇혀 지내는 답답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부분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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