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종류의 술을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고 마시는 애주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전근대 농경시대에는 곡물이 부족했으므로, 군주들은 식량이 부족하거나 매점매석으로 인한 곡물가격 인상을 꺾기 위한 시장규제 목적으로 금주령(禁酒令)을 자주 선택했다. 금주령은 왕권강화와 사회기강 정립 수단으로 적격이었다. 태종은 20차례 이상의 금주령을 내렸다.
금주령의 기준도 상당히 유동적이었다. 세종대에는 음주 자체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교화(교서 등) 중심의 태도였으며, 재난·이변이 없더라도 매년 농사철에는 금주령을 내렸다. 성종대에는 약용·제사·접대 외의 음주를 금했다. 조선시대에는 영조의 금주령이 가장 강력했다. 영조는 통치정당성에 대한 컴플렉스가 컸던 군주였던 만큼, 금주령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즉위와 동시에 금주령을 내렸고, 재위기간 52년 중 50년(50번 가량) 동안 금주령을 내렸다. 금주령의 기준으로 매우 엄격했으며, 종묘제사에서도 술 대신 식혜를 마신 적도 있다.
영조는 금주령 위반자를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중형(사형·유배)에 처했다. 영조의 결벽증적 성향은 친아들(사도세자)를 몰아 세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안색이 안 좋거나 행색이 흐트러지면, 음주를 의심하면서 다그쳤다고 한다. 영조의 집요한 추궁에 사도세자는 허위자백으로 반응했고, 영조는 이를 방탕함과 자신의 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부자 간의 신뢰는 파탄에 이르렀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감시·불신에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고, 우울증·울화병·의대증을 앓았다고 한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사도세자는 몰래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취중에 궁녀·내관을 살해하거나 궐 밖으로 무단가출를 하기도 했다. 사도세자는 체질적으로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거나 주량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결국 1762년(영조 38) 5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壬午禍變)이 일어났는데, 친모(영빈 이씨) 조차도 대의를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밖에 없었다.
영조는 2가지 명분(금주령 위반, 부왕에 대한 불복종)으로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했으나, 세자가 따르지 않았다. 결국 영조는 뒤주에 가둔 채로 굶어 죽게 하는 처분을 내렸고, 세도세자는 8일 만에 아사했다. 왕족을 칼·사약으로 처형하면 역적으로 남기에, 세손(훗날 정조)을 보호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뒤주였다. 1767년(영조 43) 영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지 5년만에 금주령을 전격 해제했으나, 임기 말에 다시 강화했다. 일시적 해제의 배경에는 개인적인 건강호전이 있었다. 관절통이 심했던 영조가 소나무 마디로 달인 송절차(내지 송절주)를 마시고 회복하자, 조상의 공덕에 보답하기 위해 종묘제사에서 예주 대신 진짜 술을 사용하라고 명한 것이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선왕의 금주령을 공식적으로 해제했다.
이미 친아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였던 국왕이 신하 하나 정도는 가볍고 단호하게 처단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고 몇 개월이 지나, 영조는 윤구연(종2품 남병사)을 참수했다. 남도병마절도사(南道兵馬節度使, 남병사)는 마천령 이남의 북청(함경도) 병마절도사를 말한다. 1762년 9월 사헌부는 윤구연이 매일 술을 마신다는 고발을 접수한 후, 자택 수색 과정에서 술냄새가 나는 빈 독 하나를 발견했다. 윤구연은 오래된 독이라고 주장했지만, 영조가 숭례문까지 행차한 가운데 윤구연을 참수되었다. 삼정승(신만·홍봉한·윤동도)가 차자를 올려 윤구연의 죄에 대해 용서할 것을 드세게 주장했으나, 오히려 영조의 노여움에 파직되었다. 차자(箚子)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이다. 왕의 명령을 위반하면 죽는다는 메세지였으며, 신하들의 기를 꺾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윤구연이 죽은 지 12년이 지난 1774년(영조 50) 영조는 죽은 윤구연에게 다시 직첩(職牒)을 지급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윤구연의 억울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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