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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음식] 프랜차이즈 습격에 무너진, 빵집

by Spacewizard 202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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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전성기를 누렸던 전통적인 지역빵집들은 1980년대 들어 햄버거와 피자 등 패스트푸드에 밀리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에 힘없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맛, 세련된 인테리어 및 마케팅 기법을 앞세운 프랜차이즈에 수요가 몰리면서 각 지역의 빵집들은 서서히 쇠퇴하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당시 프랜차이즈와 동네빵집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천안의 뚜쥬르(TouJours)이다. 1992년 뚜쥬르과자점은 서울 답십리역 사거리 코너 1층에서 개업한 이후, 1998년 본점을 천안으로 옮기면서 서울·천안에서 영업을 하였다. 2009년초 답십리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뚜쥬르과자점이 폐업을 하게 되는데, 프랜차이즈(파리바게트)가 건물주에게 대폭 인상한 월세를 제시한 것이다.

 

사실 뚜쥬르와 프랜차이즈와의 악연은 1996년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CJ푸드빌이 신규 제과제빵 브랜드로 뚜쥬르를 염두해두고, 그 사업권(상표권, 점포)의 양도를 제안했었다. 제안을 거부당한 CJ는 뚜레쥬르(Tous les Jours)를 내세워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는데, 뚜쥬르는 누가봐도 유사한 상호에 반발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뚜쥬르가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 진행 중에 합의함으로써 소송은 마무리되었다. 뚜쥬르는 유사상표 이용료와 일정기간 특정지역 출점금지를 보장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향수는 어른이 되어서도 많은 긍정적인 감정과 추억을 가져다 준다. 복잡한 사회생활 속에서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면 안정감과 자심감을 유지하게 되고, 때로는 웃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추억의 제과점에서 동생들과 함께 먹던 밀크쉐이크와 단팥빵의 달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뇌의 선택적 기억력에 감사함을 느끼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들을 잊지 않음으로써 나를 사랑해주고 소중하게 대해줬던 이들과의 연결감을 느낄 수 있다.

 

상표권 소송에서 이긴, 마산 고려당

1959년 마산 고려당이 오픈했는데, 창업자 김순연은 한국전쟁 이후 노상에서 풀빵을 팔았었다고 한다. 1974년 서울 고려당이 상호를 등록하면서 상호분쟁이 있었는데, 마산 고려당이 승소했을 정도로 마산·창원지역에서 유명한 빵집이다. 창업 당시 팥앙금빵·찹쌀떡으로 출발하여, 1980년대 밀크쉐이크·팥도너츠가 시그니처였다. 30여년 전 여름날, 점포 내를 가득한 빵내음을 맡으며 먹었던 밀크쉐이크·팥도너츠를 잊을 수가 없다. 2000년대 들어서 창동상권이 사그라지면서 2009년 강성욱이 인수하였다.

 

2005년 뉴욕을 방문했을 때, 코리아타운에서 고려당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다른 것보다 한국식 빵을 맛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이국에서 위로를 받았었다. 마산 고려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코아양과가 있었는데, 1980~90년대 창동의 약속장소로 유명했다. 

 

아직까지 전통을 고집하는, 순천 화월당

1920년 일본 시마네현 출신의 고바야시(小林, こばやし)는 순천 장천동에 화월당(花月堂)을 오픈했다. 15세 조천석은 1928년부터 화월당에 취직하여 일하였고, 1945년 가게를 인수했다. 현재 3대째 이어 오고 있는 화월당에서 먹을 수 있는 빵은 딱 2가지로, 모찌(단팥을 넣은 찹살떡)와 볼카스테라이다. 일본인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여 빵을 굽는다고 한다.

 

이전에는 지금과 달리 빙수, 셰이크, 도넛, 사라다빵과 샌드위치 등 종류가 다양했다. 오래된 지역 제과점들이 그러했듯, 화월당도 순천에서는 단순한 빵집을 넘어 젊은이들의 미팅이나 맞선 장소이면서 고급가게이기도 했었다. 1960~1970대까지 순천의 명소로써 화월당은 그렇게 번성하였다.

 
성스러운 마음에서 시작된, 대전 성심당

성심당은 한국전쟁 중 월남한 임길순이 문을 열었는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를 탈출한 후, 1956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던 중 열차가 대전역에서 고장으로 멈췄다. 어쩔 수 없이 찾은 성당의 신부는 임씨가 흥남부두를 탈출해 대전까지 오게 된 여정을 들은 뒤에, 미군이 나눠준 밀가루 2포대를 건낸 것이 대전 성심당(聖心堂, 예수의 마음을 담아 판다)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대전역 노점 앞에는 성심당 간판(나무팻말)을 만들어 세워 놓고 팔았는데, 단팥을 듬뿍 넣은 신선한 찐빵만 판매한 게 주효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튀김소보루와 부추빵이 시그니처가 되었다.


SPC의 전신, 상미당

 

1945년 10월 허창성은 옹진(황해도)에 상미당(賞美堂, 맛있는 것을 주는 집)을 오픈했는데, 호황에 힘입어 1948년 서울 방산시장(을지로 4가)에 진출했다. 1949년 개발한 무연탄 가마를 통해 원가절감과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는데, 국내 최초의 제빵 자동화 오븐이었다. 1959년 상호명을 삼립산업제과으로 변경했고, 용산공장의 가동으로 빵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1953년 설립된 샤니는 1972년 삼립식품에서 분리되었다. 1986년 설립된 귀주(샤니 자회사)는 파리크라상 1호점(반포점)을 오픈한 후, 사명을 파리크라상으로 변경했다. 1988년 파리크라상은 파리바게뜨 1호점(광화문)을 개점했다. 샤니는 사업확장에 성공했지만, 1997년 삼립식품은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부도가 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02년 샤니·파리크라상 컨소시엄이 삼립식품을 인수했는데, 분리회사가 모회사를 역으로 인수한 상황이었다.

 

2004년 출범한 SPC그룹의 사명에서 S(삼립·샤니)와 P(파리크라상)는 기존 회사명을 의미하며, 파리크라상이 SPC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본사 직영으로만 운영되는 파리크라상은 매장에서 직접 빵·요리를 직접 만드는 반면, 파리바게뜨는 공장에서 생산된 반제품을 대리점으로 배송하는 방식이다. 파리크라상은 파리바게뜨의 프리미엄 버전으로, 30여개의 직영점이 주로 서울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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